참모의 검토안이 헌법기관의 결정이 될 수는 없다

참모의 검토안이 헌법기관의 결정이 될 수는 없다

— '행정처 의견 묵살' 주장은 권한 관계를 거꾸로 세운 것이다. 재제청 여부는 법원행정처의 사무가 아니라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이다

민주당은 27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가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묵살한 독단적 결정이며,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고 했다. 행정처가 재제청을 해야 한다고 결론 내려 보고했는데 대법원장이 격노하며 거부 의견으로 다시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 농단이라 했고, 대법원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행정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 붙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출발점부터 법의 권한 구조를 거꾸로 세운 것이다.

재제청은 법원행정처의 사무가 아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제청권은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준 권한이고, 재제청에 응할지 여부는 그 제청권의 연장선에 있는 대법원장 자신의 판단이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조직법이 정한 사법행정 사무, 곧 예산과 시설, 법관 인사 실무, 등기와 통계 같은 일을 처리하는 보좌·집행 기구이고, 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그 사무를 관장한다. 대법관 제청은 하급심 법관의 보직이나 전보 같은 일상적 사법행정이 아니며, 행정처가 의결하거나 확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 법원조직법이 대법관회의의 의결사항으로 정한 것도 판사 임명에 대한 동의, 규칙 제정, 예산 요구 같은 항목이지 대법관 임명제청이 아니다. 대법관들의 기류가 어땠느냐는 전언 역시 법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정처가 후보 검증 자료를 정리하고 공문 초안을 쓰고 실무 연락을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재제청을 해야 한다는 결론 자체는 행정처의 권한이 아니다. 이 전제를 놓치면 '행정처 의견을 묵살했다'는 문장부터 법체계와 맞지 않게 된다.


'묵살'이라는 말이 권한 관계를 뒤집는다

민주당의 주장은, 행정처가 재제청이 맞다고 정리했고, 처장이 보고했고, 대법원장이 이를 뒤집었으니 독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보좌기구의 실무안이 본래의 결정이고 헌법기관의 판단은 그에 대한 간섭인 것처럼 읽히게 만든다. 그러나 실무진이 재제청이 맞다고 내부 검토한 것은 참모 의견에 불과하다. 최종 판단권자가 참모 의견을 채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독립된 조직의 결정을 짓밟았다고 부르는 것은, 참모부의 메모를 의결기관의 결정인 양 취급하는 일이다. 처장이 격노를 처음 봤다거나 대법관들이 당혹했다는 전언은 정치적 분위기 묘사일 수는 있어도, 권한 남용의 구성요건을 채우지 못한다. 헌법상 제청권자가 자기 권한을 행사한 장면을, 논점을 흐려 위법처럼 보이게 만드는 교묘한 화법이다.

직권남용 프레임은 더 어긋난다

형법상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다. 여기서 문제 된 행위는 대법원장이 자신의 제청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결정한 것이다. 행정처에 거부 의견으로 다시 정리하라고 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것은 지휘를 받는 보좌조직에 대한 지시이지 타인의 권리를 빼앗거나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구조가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은 실무 담당자가 법령상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을 위반한 바 없다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행정처 직원이 대법원장의 지시로 의견서를 다시 정리한 것이 어떤 법령상 기준을 위반했다는 것인지, 민주당은 말하여야 한다.

오히려 민주당의 논리를 따르면 대법원장은 행정처의 실무 결론을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형사 문제가 된다는 뜻이 된다. 그 순간 헌법상 제청권은 행정처 내부 검토의 추인 절차로 전락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을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실무 기구가 헌법기관을 기속해야 한다는 더 기이한 모델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쟁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법

이번 갈등의 본령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에 헌법적 근거가 있는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임명권에 종속되는지, 국회의 동의권을 건너뛰고 동의안을 보내지 않은 것이 헌법에 맞는지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헌법적 근거를 다투는 지점도 여기다. 민주당은 그 대립을 '행정처를 무시한 독단'으로 다시 쓴다. 그러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헌법기관 간 대립이 곧바로 법원 내부 문제, 행정처 폐지 담론으로 바뀐다. 기자회견 말미에 법원조직법 개정과 행정처 폐지가 등장하는 이유다.

행정처 개혁은 별개의 정책 논쟁일 수 있다. 그러나 독립 사법행정기구를 만들더라도 대법관 제청권은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대법원장에게 남는다. 행정처를 위원회 체제로 바꾸면 예산과 하급심 인사의 운영 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번 재제청 거부의 적법성 판단은 달라지지 않는다. 행정처 의견을 안 따랐다, 그러니 독립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번 결정은 중대 범죄일 수 있다는 세 단계는 각각 따로 논증해야 할 명제인데 민주당은 이를 한 문장으로 이어 붙였다.

남는 것은 전언과 출석 요구뿐이다

내부에서 격한 지시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검증할 수 있는 사실 문제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재제청 거부를 행정처 권한 침해나 직권남용으로 구성하는 것은 권한 구조를 오인한 비판이다. 헌법이 준 권한을 행사한 사람에게 참모의 검토안을 따르지 않았다고 형법을 들이대는 나라에서, 헌법기관의 독립은 남지 않는다. 대법원장에게 국회에 직접 나와 진실을 밝히라는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밝혀야 할 진실은 대법원장이 왜 참모 의견을 따르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청와대가 왜 재제청의 이유를 문서에 적지 못했느냐다. 물어야 할 곳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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