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사권으로 갚아도 되는가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사권으로 갚아도 되는가

— 견제와 균형은 헌법이 준 수단으로 해야지, 헌법에 없는 수단을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지지하는 이들을 특정 정당의 지지층으로 돌리고, 대법원장이 진영논리에 휘말린 것은 대선 전 유죄취지 환송판결 때문이며,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이니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 비판에는 세 가지 주장이 들어 있으나, 모두 헌법의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





지지자가 누구냐는 논거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다

헌법 제104조 제2항에는 진영이 없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문은, 읽는 사람이 어느 당을 지지하든 같은 뜻이다. 재제청 요구권이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다는 것, 추천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는 법원조직법 조문, 임명권은 국회 동의 뒤에 오는 마지막 단계라는 순서는 지지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주장의 내용을 반박하지 않고 주장하는 사람의 성향을 지목하는 것은 올바른 논증이 아니다.

판결에 대한 불만이 인사권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비판은 대법원장이 정치에 휘말린 이유를 대선 전 환송판결에서 찾는다. 그리고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을 범죄자로 취급한 정적의 뜻대로 인사권을 행사해 주기 어렵다고 한다. 이 문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스스로 드러낸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 때문에 임명권을 그 재판을 한 사람의 뜻대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재판의 결과를 인사권으로 갚는다는 뜻이다. 헌법이 사법권의 독립을 규정하고 대법관 임명을 세 기관에 나누어 놓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을 막기 위함이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판결을 한 법원의 구성에 개입하겠다는 논리가 허용되는 순간, 판사에게 권력자의 마음에 드는 판결을 하도록 구조적으로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나, 헌법은 대통령의 심정을 국법행위의 이유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판결 자체를 문제 삼는 방법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 수단 가운데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소멸시키거나, 대통령에게 헌법에 없는 재제청 요구권을 만들어 주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대법원장이 정치의 한 축이 된 것이 아니다. 정치가 대법원장을 축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대법원장은 스물다섯 날을 침묵했고, 헌법 조문에 기대어 재제청의 이유를 물었을 뿐이다. 판사는 여론에 호소하지 않고 절차로 말한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판사가 말하는 방식이다.

견제와 균형은 헌법이 준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삼권분립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견제는 헌법이 각 기관에 준 수단으로 하는 것이지, 필요할 때마다 수단을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다. 대법관 임명에서 대통령의 견제 수단은 국회 동의 뒤에 오는 임명권이고, 국회의 견제 수단은 동의안 부결이며, 대법원장이 헌법을 위반했다면 탄핵이라는 수단도 있다. 이 수단들은 모두 헌법에 적혀 있다. 재제청 요구는 적혀 있지 않다. 헌법에 없는 수단으로 다른 기관의 헌법상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견제가 아니라 침해다.

어떤 권력이 무리수를 두면 다른 권력이 견제하라는 것이 삼권분립이라면, 이번 사태에서 무리수를 둔 쪽이 어디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법원조직법이 정한 추천위원회를 거쳐 그 추천 인사 가운데 한 명을 제청한 것은 무리수가 아니다. 헌법에 없는 재제청을 요구하고, 국회의 동의권을 건너뛰어 동의안을 보내지 않고, 이유를 묻자 임명하지 않겠다는 입장 자체가 이유라고 답한 것이 무리수다. 그 무리수에 대해 헌법이 준 권한 안에서 응하지 않은 것이 대법원장의 거부다. 견제와 균형은 각 기관이 자기 권한의 범위 안에서 서로를 붙드는 것이지, 범위를 넘어가 상대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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