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임명 안 할 사람'은 이유가 아니다
'어차피 임명 안 할 사람'은 이유가 아니다
— 결론을 이유라고 내미는 청와대, 이유를 묻는 대법원장. 누가 헌법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 22일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힌 뒤,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은 추석 연휴에도 멈추지 않았다. 청와대는 23일 반박문에서 대통령의 임명 거부 입장 자체가 재제청을 요청한 사유이며, 임명하지 않을 후보자의 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같은 날 민주당 지도부는 대법원 청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재제청 거부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고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라 규정하고, 사퇴 구호를 외친 뒤 법원행정처장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24일에는 수석대변인 서면 브리핑으로 대법원장을 '정치꾼'이라 부르며 법전 뒤에 숨어 모사를 꾸민다고 했고, 배후에 어떤 정치세력이 있는지 답하라고 요구했다. 탄핵, 업무정지, 긴급현안질의, 국정감사 소환이 잇따라 거론되고, 내란 사건 후속 수사기구까지 입에 오르내린다. 법사위원장은 병원에 간 대법원장을 두고 도망간 것 아니냐고 했다.
이 소란 속에서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청와대는 재제청을 요구하는 이유를 말했는가.
이유의 자리에 의지를 갖다 놓았다
이호선 교수가 이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대법원장이 요구한 것은 재제청을 요청하려면 헌법적 근거와 구체적 사유를 적으라는 것이었는데, 청와대의 답은 '임명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유'라는 것이다. 왜 임명하지 않는지는 없다.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사 자체가 이유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것을 이유(ratio)의 자리에 의지(voluntas)를 갖다 놓은 것이라 했다. 그가 소개한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속 아낙네는 까닭 없이 노예를 처형하라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니까, 그게 이유다.' 13세기 영국 법률가 브랙턴은 '법이 아닌 의지가 지배하는 곳에는 왕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의 논리를 풀어 보면 정확히 그 아낙네의 문장이 된다. 왜 이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가, '임명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왜 국회에 보내지 않는가, '임명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재제청해야 하는가, '이미 임명 거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이유가 없다.
이유를 대라는 요구는 대법원장의 자존심이 아니다. 근대 법치주의가 권력에 부과한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권력이 누군가의 권리나 지위에 불리한 결정을 할 때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이유고지의무는 청문권과 함께 적정절차의 두 기둥이고, 우리 행정절차법 제23조가 처분에 이유 제시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유가 있어야 상대방이 다툴 수 있고, 제3자가 심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유를 적어야 하는 순간 권력은 스스로 이성에 구속된다. '내가 원하니까'를 이유로 적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87년 유럽재판소가 축구코치 자격 하나를 거부하는 데도 이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물며 대법원장의 헌법에 따른 제청권을 거부하는 청와대가, 이유는 말하지 않고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말해서야 되겠는가.
순서도 틀렸다
백 보를 양보해 대통령에게 임명 거부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청와대의 행위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의 순서는 제청, 동의, 임명이다. 임명권은 마지막 단계다. 임명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해도 그것은 국회의 동의 뒤에 온다. 그런데 청와대는 국회가 판단하기도 전에 '어차피 임명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 결론을 근거로 국회에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마지막 단계의 권한을 중간 단계에서 미리 행사한 것이다. 이것은 임명권의 행사가 아니라 임명권을 구실로 한 절차의 차단이다. 그로 인하여 국회는 검증할 수도,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한 헌법기관이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한 것이다. 특정 후보자가 싫으면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국회에서 부결하면 된다. 그러고도 만에 하나 국회가 동의하면 그때 거부 여부를 정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청와대는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대법원장에게 떠넘긴 것이다.
청와대는 임명하지 않을 사람을 국회에 보내는 것이 모순이라 했다. 그 논리를 뒤집어 보면 국회가 대통령이 임명할 사람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도 모순이 된다. 결국 국회는 대통령이 임명할 사람에게 동의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만 남으라는 것이다.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고, 국회를 존중한다는 말과는 정면으로 어긋난다.
대법원장의 논리는 정확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입장문은 길지 않았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부서한 문서로 하는데, 재제청 요청 문서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고, 달리 정당화할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으므로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집이 아니라 적정절차의 요구다. 이유 없는 요구에 응하는 것이야말로 이유 없는 권력 행사를 승인하는 일이다. 대법원장은 여론에 호소하지 않았고, 정치적 언사를 하지 않았고, 헌법 조문에 기대어 이유를 물었을 뿐이다. 그 물음에 청와대는 결론을 이유라고 내밀었고, 여당은 사퇴와 탄핵과 배후를 말했다. 어느 쪽이 헌법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돌아온 것이 이유가 아니라 협박이라면, 그 물음은 더 크게 되풀이되어야 한다. 이번 한 번의 임명이 아니라, '내가 원하니까'가 헌법 절차를 멈출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선례를 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유를 물은 대법원장을 지지한다. 그리고 청와대에 다시 묻는다. 왜 이 후보자는 안 되는가. 그 헌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답할 수 있다면 문서에 적으라. 적을 수 없다면, 처음부터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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