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지, 법정으로 간 이야기
귀지, 법정으로 간 이야기
귀지를 떼어 주다가 2천만 원짜리 소송을 당한 의사가 있다. 2023년 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새벽에 잠이 깨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새벽에 깨는 일이 일상이다. 귀가 간지러웠다. 누가 이 시간에 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손가락 끝으로 귀를 살살 긁어 귀지를 팠다. 손끝에 놓인 그 작은 조각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건 대체 왜 생기는 걸까."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어릴 적 어머니 무릎에 누워 귀를 파던 기억, 한때 유행했던 귀 파주는 가게, 이비인후과에서 귀지를 빼 준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다 직업병이 도졌다. "귀를 파다가 다치면 어떻게 되지?" 변호사의 새벽은 그렇게 귀지 한 조각으로 시작되어 법률 검색까지 하게 된다. 그날 새벽에 찾아본 것들을 정리해 본다.
귀지는 왜 생기는가
귀지. 의학적 이름 이구(耳垢), 영어로 세루멘(cerumen)이다. 귓구멍 바깥쪽 3분의 1 구간에는 땀샘의 사촌뻘인 이도선과 피지선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분비물이 떨어져 나온 피부 각질, 먼지, 털과 뒤섞여 귀지가 된다.
귀지의 역할은 분명하다. 귓속 피부에 기름막을 씌워 마르지 않게 하고, 약산성이라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기 어렵게 만들며, 끈끈한 성질로 먼지와 벌레를 붙잡아 고막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말하자면 귀의 왁스 코팅이자 방충망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귀가 스스로 청소를 한다는 사실이다. 귓구멍 피부는 고막 쪽에서 바깥쪽으로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데, 이 움직임을 타고 귀지가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것처럼 조금씩 밀려 나온다. 우리가 말을 하고 밥을 씹을 때 턱이 움직이는 것이 이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동력이다. 귀를 후비지 않아도 귀지가 저절로 떨어져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젖은 귀지와 마른 귀지, 그리고 유전자 하나
나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내 귀지의 대부분은 바삭한 조각이 아니라 노르스름하고 끈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이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주변 사람들의 귀지는 회색빛으로 바삭하게 부서지는데 내 것만 젖어 있으니, 혹시 귓속에 염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귀지에는 원래 두 종류가 있다.
습성(젖은) 귀지는 노르스름하거나 갈색이고 끈적끈적하다. 유럽이나 아프리카계 사람의 90% 이상이 이 유형이다. 건성(마른) 귀지는 회색빛에 바삭하게 부서진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의 80~95%가 이쪽이고, 한국인은 그중에서도 건성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든다. 그러니 한국인이면서 습성 귀지인 나는 소수파일 뿐, 병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쪽이 되는지는 놀랍게도 유전자 하나가 결정한다. ABCC11이라는 유전자인데, 귓속 이도선에서 기름과 단백질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운반 단백질을 만든다. 이 유전자의 염기 하나가 바뀐 변이가 있으면 운반 단백질이 제 기능을 못 해 분비물이 줄고 귀지가 마른 형태가 된다. 부모 양쪽에서 변이를 물려받아야 건성이 되는 열성 유전이며, 2006년 일본 나가사키대 연구진이 이를 밝혀냈다.
그렇다면 왜 이 변이가 동아시아에만 퍼졌을까.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유력한 설명이 둘 있다. 하나는 수만 년 전 동북아시아의 추운 환경에서 우연히 생긴 변이가 인구 이동과 함께 퍼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유전자가 겨드랑이 땀샘도 함께 조절하기 때문에 땀 냄새가 적은 형질이 배우자 선택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건성 귀지인 사람은 액취증이 거의 없다. 이 변이의 분포는 몽골·한국·중국 북부에서 가장 높고 동남아시아, 시베리아, 아메리카 원주민 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는데, 이는 인류가 이동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간다. 귀지 한 조각이 인류의 이동사를 품고 있는 셈이다.
부수 효과도 있다. 같은 유전자가 유방의 분비에도 관여해 건성 귀지인 사람은 초유 분비량이 적다는 보고가 있고, 유방암 위험과의 관련성도 연구되고 있다. 귀지가 체취와 모유, 인류의 이동사까지 이어진다니, 새벽에 무심코 털어 버릴 뻔한 조각치고는 사연이 깊다.
그렇다면 귀지는 파야 하는가
이비인후과 학회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결론은 "귀지는 대부분 저절로 나오니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특히 면봉은 귀지를 꺼내는 도구가 아니라 안으로 밀어 넣는 도구다. 겉의 조금은 묻어 나오지만 나머지는 고막 쪽으로 다져지고, 이것이 반복되면 귀지가 굳어 귓구멍을 막는 이구전색(耳垢栓塞)이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귀지가 귓구멍을 막을 정도로 많아지면 소리가 잘 안 들리고, 귀가 먹먹하고, 이명이 생기거나 통증이 온다. 이럴 때는 제거해야 한다. 다만 스스로 파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흡입기나 전용 기구로, 필요하면 귀지를 녹이는 약을 먼저 넣고 빼는 것이 정답이다. 보청기를 쓰거나 귓구멍이 좁은 사람, 나이가 들어 귀지가 딱딱해진 사람은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컨대 "귀지가 많으면 잘 안 들릴 수 있는가"라는 새벽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고, "그러니 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증상이 있을 때, 병원에서"이다.
귀 파주는 가게, 그리고 사고가 나면
한때 귀를 파 주는 가게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발소나 미용실에서 서비스로 귀를 파 주던 시절도 있었다.
귓구멍 끝에는 종이처럼 얇은 고막이 있다. 기구가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상처가 나고, 고막이 뚫리면 청력이 떨어지거나 중이염이 따라온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이런 시술을 업으로 하는 것이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사고가 나면 형법상 과실치상이 문제되고, 치료비와 위자료를 물어야 하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자격과 장비를 갖춘 의사가 귀지를 빼 주다가 피가 났다면 어떨까.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다.
귀지 떼어 주다 2천만 원 소송을 당한 의사
2023년 5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게시판을 통해 알려진 사건이다.
중이염이 의심되는 아이를 데리고 부모가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귓속을 내시경으로 보려면 먼저 귀지를 걷어내야 했고, 의사는 귀지를 제거했다. 그런데 그 뒤 아이 귀에서 피가 났다. 부모는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상죄로 형사 고소했고, 이어 2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비슷한 시기, 경북 포항의 한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정반대 방향의 사건이 있었다. 24개월도 안 된 아기의 귀를 봐 달라는 부모에게, 의사는 아기가 협조하기 어렵고 귀지를 빼다 다치면 소송 걱정이 있으니 장비가 더 좋은 이비인후과로 가라고 권했다. 부모는 이를 진료 거부라며 보건소에 민원을 넣었고, 의사는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귀지를 떼어 주면 소송을 당하고, 떼어 주지 않으면 진료 거부로 신고를 당한다. 소아과 의사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소송은 어떻게 되었나
새벽에 가장 궁금했던 것이 이 대목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사건들의 결말은 어느 언론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소식은 요란하게 퍼졌지만,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조용히 묻혔다. 인터넷에는 "취하되었다"거나 "혐의없음으로 끝났다"는 그럴듯한 서술이 떠돌지만, 근거가 확인되는 것은 없었다.
이것이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말해 준다. 이런 종류의 분쟁은 대개 요란하게 시작해서 소리 없이 끝난다. 변호사로서 이 사건의 구조를 보면 결말이 어느 방향이었을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첫째, 형사에서 업무상과실치상이 성립하려면 '상해'가 있어야 한다. 귓속 피부에 살짝 긁힌 상처가 나서 며칠 뒤 저절로 아무는 정도라면, 법원은 이를 상해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아이가 움직여서 생긴 상처인지, 의사가 무리하게 기구를 넣어 생긴 상처인지, 진료 뒤 아이가 손을 대서 생긴 것인지를 가려야 하는데 이를 증명할 자료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셋째, 민사에서 2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후유증이 남지 않은 경미한 상처에 대한 위자료로는 우리 법원의 기준과 거리가 멀다. 가더라도 인용될 금액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사가 마음 편히 이겼을 리는 없다. 고소를 당하는 순간 경찰서에 불려가야 하고, 소장을 받는 순간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 이기더라도 그 시간과 비용, 그리고 마음의 상처는 돌려받지 못한다. 진료비 몇천 원짜리 진료에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소송의 승패보다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벌이 되는 것, 이것이 이 사건의 진짜 결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는 어떻게 반응했나
의료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소아과 의사 없는 게 낫겠다"는 자조가 나왔고, 진료비 몇천 원에 수천만 원 소송을 감당하라는 것이냐는 항변이 이어졌다. 이비인후과의사회도 소아 환자 진료를 기피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며, 이러다 동네 의원에 '노키즈존'이 생길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사건은 그 무렵 이어지던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과 소아 진료 기피 논란에 기름을 부은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된다.
현장은 실제로 바뀌었다. 요즘 소아과에서 귀지를 발견하면 "이비인후과에서 빼세요"라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의사들이 위험을 피하기로 한 것이다. 그 위험 회피의 비용은 결국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두 곳을 도는 부모들이 치른다.
새벽에 얻은 두 가지 교훈
귀지 한 조각에서 시작된 새벽의 공부는 두 가지 교훈으로 끝났다.
하나는 몸에 관한 것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 귀는 스스로 청소하고, 스스로 지킨다. 간지럽다고 면봉을 찔러 넣는 것은 잘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손을 넣는 짓이다. 몸이 알아서 하는 일에는 되도록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하나는 법에 관한 것이다. 소송은 권리를 지키는 도구이지만, 사소한 일에 무겁게 휘두르면 그 무게는 사회 전체가 나누어진다. 귀지 하나에 2천만 원을 청구한 부모는 자기 아이를 지키려 했겠지만, 그 결과 다른 수많은 아이들이 소아과에서 귀지를 빼지 못하고 돌려보내지게 되었다. 분쟁을 업으로 다루는 사람으로서, 법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보태고 싶다.
온갖 궁금증이 해소되고 나니 출근시간이다. 귀는 다시 간지럽지 않았고, 기분 좋게 출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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