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기억해 두겠다"와 이란의 "대가가 따른다" 사이에서

 

파병하면 이란이 우리 기업을 때리고,
안 하면 미국이 핵우산을 거둔다 — 그래도 길은 있다

미국은 "한국의 자원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며 호르무즈 파병 결정을 재촉한다. 이란은 한글로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경고한다. 이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테헤란대 마란디 교수가 한 발 더 나갔다. 한국이 참전하면 이란은 한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군 자산뿐 아니라 사우디·UAE·카타르 등 중동 각지의 한국 기업과 민간 시설까지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것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지는, 파병론에 대한 찬반 양쪽의 논거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파병론의 논거

첫째, 안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 우리는 미국의 확장억제에 기대고 있고, 그 실효성은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신뢰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억해 두겠다"는 말과 함께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했다. 파병 거부가 확장억제의 약화로 이어진다면 그 비용은 관세 몇 퍼센트와 차원이 다르다.

둘째, 경제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씌운 연간 200억 달러 한도가 흔들리고, 미국은 반도체 관세를 앞세워 현지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파병은 이 협상의 지렛대로 쓸 수가 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에 육박하는 우리로서는 호르무즈의 자유 통항 자체가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미국의 힘에 그 안전을 기대면서 기여는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셋째, 위상이다. 미국·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국제연대에 참여하면 항행 정보와 호위 체계에 직접 접근할 수 있고, 조선·방산·해양안보 협력이 확대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도 얻는다.

파병불가론의 논거

첫째, 전쟁의 명분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도, 미 의회의 전쟁 승인도 거치지 않았다. 2004년 자이툰부대 파병 때는 적어도 미 의회 승인과 이라크 재건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이란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해도, 그것이 선제 공격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둘째, 동맹국들의 선택이다. 캐나다와 호주는 파병을 공식 거부했고, 영국 총리는 "이기지 못할 전쟁에 젊은이들을 보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독일과 프랑스도 거부했으며, 일본은 평화헌법을 이유로 자위대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동맹들이 모두 발을 빼는 전쟁에 한국이 앞장설 이유가 없다.

셋째, 보복의 위험이다. 이란은 이미 호르무즈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장금상선 유조선 5척을 포함한 45척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억류·화물 압수를 경고했다. 2021년 한국케미호 억류 사태도 생생하다. 여기에 마란디 교수의 경고까지 더하면, 중동에서 원전·발전소·신항만 건설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우리 기업과 그 현장의 근로자, 각지의 교민이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란이 미국에 협조한 중동 국가의 정유·에너지 시설에 드론 공격을 감행해 온 전력을 생각하면 빈말로 넘기기 어렵다.

넷째, 파병이 문제를 끝내 준다는 보장이 없다. 천문학적 대미 투자 약속 뒤에도 미국은 연간 투자한도를 흔들고 반도체 관세까지 다시 꺼냈다. 이에 비추어 보면 파병은 다음 요구를 막는 방패가 아니라 다음 요구를 부르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파병을 거부하면 동맹의 신뢰와 확장억제, 관세·투자 협상을 확실히 잃게 된다. 파병하면 명분 없는 전쟁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고 이란의 보복 위험과 국론 분열을 떠안는다. 이것이 한국이 처한 딜레마의 실체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신중론에 쏟아질 공격

이런 상황에서는 파병 반대를 공식화하는 것도, 파병을 서둘러 결정하는 것도 아닌 신중론적인 견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신중론이 받을 공격도 살펴 보아야 한다. 파병론 쪽에서는 "결국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 동맹은 타이밍인데 뒤늦은 기여는 값을 받지 못한다, 이란을 설득한다는 것은 안 될 줄 알면서 내세우는 알리바이다"라고 할 것이다. 반대론 쪽에서는 "'최후에는 보낸다'는 말이 들어간 순간 그것은 반대가 아니라 예약된 찬성이다, 이란이 비전투 부대도 침략으로 보겠다는데 비전투가 무슨 의미냐"라고 할 것이다. 파병에 대한 양쪽 입장에서의 공통된 공격점은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중론은 기다림이 아니라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 원칙에 우리 스스로를 예속시켜 그에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원칙 있는 신중론, 다섯 가지

첫째, 조건을 먼저 못박아 퇴로를 끊는다. 양쪽 모두에게 예측 가능한 나라가 되는 것이 오히려 가장 강한 협상력이다. 기회주의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이지만, 원칙은 상황이 바뀌어도 입장을 지키는 것이다. 파병을 하더라도 전투 부대는 보내지 않는다. P-8A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기뢰와 부유 폭발물을 제거하는 폭발물처리반 같은 비전투 자산에 한정하고, 미군의 작전통제 아래 들어가지 않는 독자 지휘의 지원만 가능하며, 이란 영해와 봉쇄 작전 구역에는 들어가지 않고, 미군의 대이란 공격 작전에는 어떤 형태로도 참여하지 않으며, 장병 안전이 위협받으면 즉시 철수한다. 이 조건을 국회 결의 형태로 미리 공식화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이 압박을 높여도 그 이상은 나가지 않을 수 있고, 이란이 도발해도 그 이하로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제로 보내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예약된 찬성'이라는 공격에 대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둘째, 시간을 버는 근거를 미국 선거가 아니라 우리의 절차에 두어야 한다. 결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결정을 위해 쓰이는 시간은 국회 동의 절차, 영국·프랑스 등이 제안한 국제연대의 구성과 성격 확인, 이란과의 외교 채널 가동이라는 우리 쪽의 이유여야 한다.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미국 중간선거가 지나가고 압박의 강도와 방향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부산물이지 목적으로 비치지 않게 된다. 시간을 버는 것과 시간을 쓰는 것은 다른 것이다.

셋째, 기다리는 동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기여는 하여야 한다. 군대를 보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걸프 국가들에 대한 기뢰 탐지 장비와 훈련 지원, 상선 항행 정보 공유 체계 참여, 아덴만 청해부대의 임무 강화, 전쟁 피해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 통항 재개 이후 해협 복구와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여하고 있다, 다만 총을 들고 가지 않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신중론이 회피론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이것이 '눈치만 본다'는 공격에 대한 방패이다.

넷째, 일본 및 유럽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고, 그 사이에 이란을 설득한다. 파병을 거부한 독일·프랑스, 발을 빼는 영국, 헌법을 이유로 버티는 일본과 입장을 같이하겠다고 밝히면 미국의 압박이 한국 한 나라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이란의 보복 명분도 줄인다. 이와 동시에 파병의 목적이 항행의 자유와 우리 선박·교민의 보호이지 이란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는 점을 이란 외교 당국에 사전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설명해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란과 우리 사이에 동결자금 문제를 풀어낸 외교 경험을 살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섯째, 이 원칙이 이번에만 만들어낸 편의적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과거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2004년 자이툰부대는 비전투·재건 임무였고, 2020년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작전구역 확대는 미국 주도 호위연합에 합류하지 않은 독자 작전이었다. 국회 동의, 비전투 우선, 독자 지휘라는 원칙은 한국 해외 파병의 일관된 전통이며, 이번 신중론은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감수할 것

기회주의자는 딜레마가 없는 척하며 양쪽에 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원칙 있는 사람은 딜레마를 인정하면서 무엇을 포기할지 밝히는 사람이다. 물론, 위와 같은 입장을 택하면 미국으로부터는 성의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들을 것이고, 관세와 투자 협상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편, 이란으로부터도 완전한 신뢰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손실을 감수하는 대신, 우리 장병과 중동의 우리 기업·교민을 지키고,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 이름을 올리지 않으며, 최후에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정한 조건 아래 비전투 지원부대를 독자 지휘로 보낼 수가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맺으며

북한의 핵 앞에서 한미동맹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것이 명분 없는 전쟁의 최전선에 우리 젊은이들과 중동의 우리 국민을 내세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대의 선언도 찬성의 결단도 아니다. 조건을 먼저 밝히고, 그 조건에 스스로를 묶고,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기여를 하며, 미국과 이란 양쪽을 설득하는 일이다. 우리가 내민 조건으로 인하여 무엇을 잃을지 먼저 말하면,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고,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완전히 잃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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