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왜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야 하나

 대통령은 왜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야 하나

— "국회로 안 보낸 게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

들어가며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했는데, 대통령이 그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지 않고 다시 제청하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재제청을 요구하려면 이유를 밝히라는 입장입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국회에 보내지 않은 건 법적으로 당연하다"는 주장이 돌고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동의란 내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 받는 것이다. 국회에 동의안("대법관 아무개의 임명에 동의한다")을 보내는 건 곧 임명하겠다는 뜻이다. 임명하기 싫은 사람을 보내는 건 국회에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모욕이고, 국회가 덜컥 동의하면 곤란해진다. 무조건 보내야 한다면 대통령 임명권은 껍데기가 된다. 국회 동의 후에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 정치적 파장이 훨씬 크다. 그러니 임명하기로 결심했을 때만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 보내서 부결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미리 상의 없이 서면으로 제청한 '관행 파괴'를 인정하는 셈이라 대통령이 그러지 않은 것이고, 나도 그 판단에 동의한다.

들으면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하나씩 따져 보면 곳곳에 구멍이 있습니다.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1. 헌법상의 '동의'는 부모님 허락과 다르다

위 주장이 떠올리는 '동의'는 이런 겁니다. 중학생이 휴대폰을 사려면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지만, 휴대폰을 안 사기로 하면 부모님께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님 동의는 아이를 보호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안 하겠다면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 동의는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사람을 제멋대로 앉히지 못하도록 견제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견제받는 사람이 "견제를 받을지 말지는 내가 정하겠다"고 하면, 그건 더 이상 견제가 아닙니다.

2. 대법관임명 절차는 대통령이 시작하는 일이 아니다

이어달리기를 생각해 봅시다. 첫 주자(대법원장)가 이미 출발해서 두 번째 주자(국회)에게 바통을 넘기려 합니다. 마지막 주자는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나는 안 뛸 거니까 두 번째 주자도 뛰지 마. 첫 주자는 출발선으로 돌아가서 다시 뛰어. 내가 뛰고 싶어질 때까지 계속." 대통령의 재제청요구는 마지막 주자 한 사람이 언제 경기를 할지, 누가 뛸지를 모두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기 싫은 일에 동의받을 필요 없다"는 말은 내가 일을 시작할 때나 통하는 얘기입니다. 대법관임명 절차는 대통령이 시작하는 일이 아닙니다. 후보자를 고르고 절차를 시작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법원장입니다.

3. "국회에 보내는 것 = 임명하겠다는 약속"이라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

이 주장은 국회에 보내는 동의안에 "대법관 아무개의 임명에 동의한다"고 적혀 있으니, 보내는 순간 대통령이 임명을 약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국회가 찬성할 때 채택하는 문장입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아니라 국회의 결정문입니다.

게다가 위 주장에서는 "국회가 동의해도 대통령은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보내는 것이 임명 약속이라면, 동의 후에 거부하지 못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반대로 동의 후에도 거부할 수 있다면, 국회에 보낸다고 임명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임명 안 할 사람은 못 보낸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4. "대통령 권한이 무력해진다"는 말에 대하여

이 주장은 무조건 국회에 보내야 한다면 대통령이 국회 뜻을 따를 수밖에 없어서 임명권이 껍데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어떨까요?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후보를 국회에 안 보낼 수 있다면, 대법원장이 누구를 추천하든 대통령 마음에 드는 사람이 올 때까지 막을 수 있습니다. 앞의 이어달리기에서 마지막 주자가 "내가 뛰고 싶어질 때까지" 첫 주자를 계속 출발선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대법원장의 추천권과 국회의 동의권이 껍데기가 되고, 사실상 대통령이 추천까지 하는 셈이 됩니다.

시소처럼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올라갑니다. "누구 권한이 무력해지느냐"로는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헌법이 정한 순서를 봐야 합니다. 순서는 대법원장 추천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입니다. 대통령에게 거부할 힘이 있다고 쳐도, 그건 맨 마지막 차례에 쓰는 힘입니다. 마지막 차례의 힘을 중간에 미리 꺼내 써서 국회 차례를 없애는 것은 순서를 어기는 것입니다.

5. "정치적으로 곤란하다"는 헌법을 해석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이 주장은 국회가 동의한 사람을 대통령이 거부하면 정치적 파장이 크다고 합니다. 또 "임명하기 싫어서 부결을 기대하고 보냈는데 국회가 덜컥 동의하면 어쩌나"라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헌법이 국회 동의를 넣어 둔 이유가 바로 그 곤란함입니다. 국민이 뽑은 국회가 찬성한 사람을 대통령이 거부하려면, 그만한 책임을 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국회가 동의해 버리면 어쩌냐고요? 그때 대통령이 임명할지 말지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건 제도의 허점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책임지기 싫어서 앞에서 절차를 끊는 것은 헌법이 짜 놓은 책임 구조를 피해 가는 것입니다.


6. 국회를 배려한다면서 국회 차례를 없앴다

이 주장은 임명 안 할 사람을 국회에 보내면 국회에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것이고 국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안건이 쓸데없는지 아닌지는 국회가 판단할 일입니다. 국회에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국회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건 설득력이 없습니다. 국회가 헌법에 따라 가진 권한을 아예 쓸 수 없게 막는 쪽이 훨씬 더 국회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7. 정작 핵심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재제청을 요구하려면 이유를 말해야 하느냐"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임명 안 하기로 결심했으면 그 뜻만 밝히면 된다"고만 합니다. 왜 이유 없이 결심만 밝혀도 되는지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유를 요구합니다. 회사가 직원 승진을 거부하거나, 구청이 영업 허가를 내주지 않을 때도 이유를 적어야 합니다. 이유가 있어야 반박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옳고 그름을 따져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시민에게도 이런데, 헌법기관이 다른 헌법기관의 결정을 거부하면서 이유를 안 대도 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추천을 무조건 따라야 하느냐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 입장이든 거부하려면 이유는 대야 한다는 것까지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이 주장은 결론에서 "임명 결심 후에만 보내는 게 타당하다"고 하지만, 헌법이나 법률상 근거는 밝히지 않은 채 그냥 "타당하다"고 선언하는 데 그칩니다.

8. "관행을 깼다"로는 헌법 절차를 건너뛸 수 없다

이 주장은 마지막에 "국회에 보내서 부결시키면 서면 제청이라는 관행 파괴를 인정하는 셈"이라서 대통령이 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미리 상의하고 추천하는 게 좋은 관행이라는 말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행은 관행이고, 헌법은 헌법입니다. 상대가 관행을 어겼다고 해서 내가 헌법에 적힌 절차를 건너뛰어도 되는 건 아닙니다. 관행 위반에 대응한다면서 헌법 위반을 하면 더 큰 잘못이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렇게 판단했고, 나도 동의한다"는 말은 이유가 아니라 의견 표명일 뿐입니다.


맺으며

이 주장이 출발한 생각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 할 일에 굳이 허락받을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 생각은 내가 시작한 일일 때만 맞습니다.

대법관 임명은 대통령 혼자 시작하고 끝내는 일이 아닙니다. 대법원장이 추천하고, 국회가 검증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세 주자의 이어달리기입니다. 첫 주자가 이미 출발한 이상, 마지막 주자가 "나는 안 뛸 테니 너희도 멈춰라, 내가 뛰고 싶을 때까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기로 했더라도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유를 대고 거부하느냐.

헌법이 대법관 임명을 세 기관에 나눠 맡긴 이유는, 어느 한 사람의 마음만으로 대법관이 정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논리로 이 구조를 대통령 한 사람의 선택으로 바꿔 버리면, 헌법이 권력을 나눠 놓은 뜻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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