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만 먹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이슬만 먹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김의겸의 변명과 김승원 후보자, 그리고 공직자의 기본 자질


뭉뚱그리기의 함정

김의겸 의원은 "현실적으로 이슬만 먹고 사는 분을 후보자로 고를 수는 없다"고 했다. 청문회를 하루 앞둔 라디오에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한 말이다. 여당 법사위 간사가 자당 후보자를 감싸는 일은 흔하다. 문제는 그 감싸는 방식이다. 그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의혹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개인 도덕성'에 담은 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모두 덮으려 한다.



사생활의 흠과 공무 개입은 다르다

음주운전과 위장전입은 개인의 삶에서 생긴 흠이다. 그것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평생 공직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김 의원의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말이 그 대목에만 머물렀다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국민은 장관 후보자에게 성인(聖人)이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약 로비 의혹과 협동조합 의혹은 결이 다르다. 이것은 사생활의 흠이 아니라, 공적인 업무에 부당한 방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사생활의 흠은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가'를 묻지만, 공무 개입 의혹은 '공직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가'를 묻는다. 전자는 도덕의 문제이고, 후자는 자질의 문제다.

인허가 청탁과 공공재원의 가족 순환

신약 로비 의혹을 보자. 브로커의 부탁을 받아 식약처장에게 임상시험 승인을 챙겨달라는 취지로 움직였다는 것, 승인이 되면 큰돈이 된다는 취지의 말이 오갔다는 것, 후원금 논의가 있었다는 것, 승인 기간이 평균보다 훨씬 짧았다는 것, 신약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국회의원이라는 공적 지위를 가지고 행정기관의 인허가 절차에 손을 댔다는 의혹이다. 개인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일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청탁과 알선을 한 것이다. 검찰은 기소유예로 끝냈지만, 기소유예는 무죄가 아니다. 혐의를 인정하면서 재판에 넘기지 않은 처분일 뿐이다. 본인은 공익 민원이라 하고, 김의겸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한 표적 수사(이 부분은 자기들만 아는 뭔가가 있다는 뉘앙스로 들린다)라고 한다. 수사의 정치성을 따질 수는 있다. 그러나 수사가 정치적이었다는 주장이 곧 행위가 정당했다는 증명은 아니다. 정치 공방으로 공직 윤리의 질문을 지울 수는 없다.

협동조합 의혹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원장인 사회적협동조합이 국회의원 당선 뒤 지역구로 옮겨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지정됐으며, 정부 바우처로 수억 원의 수입을 올려 그중 상당액이 배우자와 자녀의 급여로 갔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부인도 특수교육과를 나오고 아들, 딸 모두 그 분야를 전공해 오랫동안 종사해 온 분들"이라고 했다. 가족의 전공과 헌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질문은 가족의 이력서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지위가 가족조합의 이전, 지원기관 지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공적 지원이 가족의 급여로 지급되는 것을 방치했는지다. 이것 역시 개인의 생활 태도가 아니라, 공적 제도와 공공재원을 사적 영역에 끌어들였기에 문제인 것이다.

최저선을 내려놓는 순간

김 의원의 발언이 부적절한 이유, 그가 사생활의 흠과 공무 개입 의혹을 같은 무게로 취급하며, 전자에나 통할 법한 변명을 후자에까지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말은 음주운전에는 변명이 될지 몰라도, 인허가 청탁과 공공재원의 가족 배분에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대다수 공직자와 국민은 그 경계를 안다. 흠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를 사적인 편의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이 공직자의 기본 자질이다. 이 자질의 결여를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기준을 포기하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기소를 통해 공익과 사익의 경계를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것은 처벌받지 않는 요령이 아니다. 제도의 틈을 알고도 들어가지 않는 자세, 사익이 공익의 옷을 입었을 때 그 옷을 벗기는 감각이다. 인사청문회는 이 사람이 그 감각을 가졌는지를 가리자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공직을 사적 이익의 통로로 쓰지 않는 사람을 원할 뿐이다. 그 최저선마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려놓는다면, 남는 것은 권력이 서로를 봐주는 방식, 곧 부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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