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섬이 아니다

 2026년도 달빛교류 참가 기행문

사람은 섬이 아니다

대구지방변호사회 · 광주지방변호사회

2026. 9. 12.(토)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대구지방변호사회 달빛교류위원장 이석화

새벽 버스, 남쪽 바다를 향해

아침 일곱 시 반, 햇살이 화창하고 하늘은 이미 가을을 향하는 듯 높고 청명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 창밖으로 익숙한 도심은 천천히 멀어지고, 신천대로를 벗어날 즈음 도로 옆에는 붉게 만개한 백일홍이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화려하게 증명하는 듯했다. 목적지는 여수. 해마다 한 차례, 달빛처럼 서로를 비추며 이어 온 대구와 광주의 만남이 올해는 남해의 섬과 바다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중간에 두 곳의 휴게소에서 다리를 풀고 열한 시 사십 분경 도착한 여수, 먼저 와 있던 광주 회원들이 버스 앞에 늘어서서 환영한다. 그동안 수년에 걸쳐 익숙해진 얼굴들이다. 이름은 가끔 가물거려도 웃음과 목소리는 기억 속에 또렷하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사이가 다시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올해 대구회의 참가자 명단은 예년과 사뭇 달랐다. 선배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이니 그럴 만한 일이나, 여성 변호사가 열 명이나 함께했다는 것은 큰 변화다. 청년 변호사들도 여럿 합류하여 출발 때부터 활기가 넘쳤다.



황소게장에서의 상견례

점심은 봉산동의 황소게장이었다. 간장게장과 고추장게장이 상을 채웠고, 갈치조림은 두툼하지는 않았으나 갓 잡아 올린 듯 살이 싱싱했다. 집게로 게 다리를 가르는 소리, 밥을 비비는 소리 사이로 오랜만에 듣는 대구와 광주의 사투리가 한 상에서 뒤섞였다. 떠들썩한 수다가 상을 덮었다. 맛있게 먹고 나니 상 위에 그 흔적들이 수북하다. 식사 전에는 물컵을 놓을 틈도 없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가 식사 후에는 얼마나 잘 먹었는지를 보여 주는 남도의 상차림은, 시종일관 손님들에게 그 위용을 과시한다. 여수에 온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참가자 소개를 하면서 지난 세월의 기억들을 떠올린 다음 오동도로 향했다. 일정표에는 요트 투어와 자유 탐방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가을의 문턱이라 해도 하늘이 너무 맑아 요트에서의 햇살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요트를 타고 여수 앞바다를 한 바퀴

오동도 선착장에서 요트에 올랐다. 옆 부두에는 용머리를 앞세운 거북선 모양의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지만, 우리 일행이 탄 것은 하얀 요트였다. 배가 뭍을 떠나자 광주회에서 준비한 샴페인과 맥주가 돌았다. 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소리 속에 배는 여수 앞바다를 천천히 한 바퀴 돈다. 강한 햇빛과 푸른 바닷빛이 너무 아름다워 뱃머리에 올라 풍광을 즐기자니,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실현되는 가장 추악한 인간의 욕망’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단지,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와 작열하는 태양’의 그 멋진 장면만을 연상하였을 뿐이다. 뱃머리에 현수막을 펼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니, 배 위가 잠시 운동회 같다.

갑판으로 나가니 대구회의 상무균 선배님이 계셨다. 같은 대구에서 생활하면서도 뵌 지가 참 오래되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마주하니 더욱 반가웠다. 얼굴빛이 몰라보게 좋아 보이더니, 담배를 끊은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하신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안색이 조금 어두웠는데 이제는 참으로 건강해 보인다고 하니 환하게 웃으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하고 웃는 일, 달빛교류가 해마다 이어지는 이유는 결국 이런 사소한 대화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동도 숲길, 땀으로 걷다

배에서 내려 오동도를 걸었다.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로 바다가 언뜻언뜻 비치고, 나무 데크 끝에 서면 절벽 아래로 남해의 물빛이 열린다. 체력이 약해 보이는 조은희 변호사는 의외로 잘 걷는다. 용골이며 용바위며 해안 곳곳으로 내려가 구경하자는 바람에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거듭했더니 함께 다닌 일행들이 오히려 다리가 풀리고 힘들어 했다. 얕잡아 보고 함부로 같이 산보하다가는 큰코다치겠다 싶었다. 등대에 올라 보고 용굴까지 다녀오니 풍경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온몸은 땀에 젖고 피로가 몰려올 즈음, 바람골이라 표시된 곳에 서니 바위 사이로 올라오는 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하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여야 하나, 우리의 태극권 마니아가 영 나타나질 않는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며 기를 충전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그는 숲에서 버스로 오는 길을 놓치고 헤매는 중이었다. 전화로 설명을 해 보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하늘의 태양을 보고 오른쪽으로 난 길만 따라 나오세요.’ 이런 정도의 길 안내 후에야 위치 파악이 되었다. 수십 년간 태극권을 수련한 자칭 도사에 가까운 경지라고 늘 자랑하는 그였지만, 사람들의 기를 느끼며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가끔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지만, 이번에도 예외 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니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섬박람회에서 떠올린 시 한 구절

이어서 여수세계섬박람회장을 찾았다. 언론에서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보도가 나온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검은 피라미드 모양의 전시관은 벽면 전체가 화면이 되어 빛의 파도가 흐르고, 관람객들은 그늘을 찾아 줄을 선다. 제1회 박람회이다 보니 콘텐츠의 구성이나 안내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처음 여는 행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첫걸음은 늘 서툰 법이다.

섬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나는 늘 존 던의 시가 떠오른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진,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는 그 시다. 시인은 그 누구도 홀로 떨어진 온전한 섬이 아니며,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라고 노래했다. 대구와 광주는 지도 위에서 서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함께 보내며, 우리는 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다 밑으로 이어진 하나의 땅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한일관의 만찬, 유모차의 아이가 어린이가 되어

저녁은 봉산동 한일관의 한정식이었다. 대형 룸이 여럿이어서 단체 손님을 받기에 알맞은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전라도 말씨가 아닌, 어딘가 익숙한 말씨가 들려 어디서 오셨는지 여쭈니 태백시의 통장들이 버스 네 대로 관광을 왔다고 한다. 족히 다섯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일 텐데, 섬박람회라는 하나의 행사가 전국에서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대구는 무엇으로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최근 대구읍성 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동모금회 신홍식 회장이 떠올랐다. 대구읍성은 평지에 세워진 보기 드문 성곽이었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될 무렵 허물어져 도로가 되었다. 그 도로들은 지금 대구의 간선도로가 아니어서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없으니 복원에 큰 문제가 없고, 복원 뒤에는 관광객 유치 효과가 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업이니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상 앞에 마주 앉은 광주회의 양동학 선배님과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프가 시들해질 참이었는데 사모님이 뒤늦게 골프에 재미를 붙이는 바람에 다시 열심히 치게 되었고, 요즘은 부부가 함께 곳곳으로 골프여행을 다닌다고 하였다. 듣고 보니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노후에 참으로 괜찮은 건강 비결이겠다 싶었다.

이번에도 남도의 상차림답게 접시가 겹겹이 놓였고, 술잔이 오가는 사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우리 이담 회장은 며칠 전 대장 용종을 제거하여 술을 마실 수 없다며 이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언제나 우리에게 멋진 사진을 찍어 주고 때로 유머 감각을 선보이는 배진덕 변호사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술을 못 마시는 사정을 재미있게 놀리려고 그 자리에서 회장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 바쳤으니, 호가 ‘용종’이라. 이름 앞에 호를 붙여 ‘용종 이담 선생’이라 부르니 좌중이 뒤집어졌다.

광주 회원이 데려온 자녀들 가운데, 4년 전 유모차를 타고 왔던 아이가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 다시 왔다. 그 아이가 젓가락을 들고 제 몫의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세월이 참 빠르고 아이들은 참 잘 자란다는 생각을 하였다. 달빛교류의 햇수는 그렇게 아이들의 키로도 헤아려진다.

건배사도 이날의 별미였다. 광주의 하재욱 회장은 새로운 건배사를 선보였다. 아프리카에 꿀과 젖이 흐르는 풍족한 나라 ‘잔비아’가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늘 잔을 채우고 비우며 유쾌하게 살아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건배 구호가 있었으니, 선창이 “까뿌 까뿌”요 후창이 “오키 뜨뿌 뜨뿌”라 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 뜻도 없는 소리이지만 해석만은 멋지게 달렸다. 선창은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후창은 “좋아 좋아”라는 것이다. 유머러스한 설명에 모두 따라 외치며 잔을 비웠다.

행사는 대구회 부자(父子) 변호사의 건배사로 마무리되었다. 언제나 걸음과 행동이 재빠른 김중기 회장님, 그리고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가 넘치는 아들 김정원 변호사가 나란히 잔을 들었다. 성격은 정반대여도 한 자리에서 같이 잔을 드는 모습은 달빛교류가 세대를 이어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보여 주었다.


밤 버스, 그리고 고마운 이름들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대구로 출발하여, 밤 열한 시 오 분 버스는 다시 대구지방법원 앞에 되돌아왔다. 날씨가 더워 조금은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광주의 진용태 달빛교류위원장과 회원들의 환대, 그리고 푸짐한 음식과 볼거리를 떠올리면, 내년 대구에서는 또 어떤 음식과 볼거리를 마련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긴 일정을 함께해 준 이병희 회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와 달빛교류위원회 위원들, 김중기·용종 이담 전임 회장님, 그리고 우리 대구 회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광주에서 많은 준비를 해 주신 하재욱 회장, 노강규·최병근 전임 회장을 비롯한 광주 회원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 내년 가을, 대구의 달빛 아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하루를 접는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대통령의 반려는 문서로 존재하는가

‘취지’로 듣고 싶겠지만, ‘문언’으로 말하는 사람.

헌법으로 본 대법관 임명제도의 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