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반려는 문서로 존재하는가

 대통령의 반려는 문서로 존재하는가

— 부서(副署)한 국무위원이 없다면 반려는 없었던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8월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서면 제청했다. 열흘 뒤인 8월 28일, 청와대는 수석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으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되돌려 보낸 것은 1958년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9월 11일, 청와대는 다시 브리핑에서 새 추천위원회를 꾸리지 말고 기존 추천위가 올린 나머지 후보 가운데서 신속히 재제청하라고 요구했다. 반려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다시 제청할지'까지 지정한 것이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제청, 동의, 임명. 세 개의 권한을 세 개의 헌법기관에 나누어 준 것은 어느 한 기관도 혼자서는 대법관을 만들 수 없게 하려는 설계다. 임명권자가 제청의 내용을 지정하는 순간 대법원장의 제청권도 국회의 동의권도 지워지고, 남는 것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뿐이다. 법원조직법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이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천을 마친 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 이미 해산된 위원회의 명단을 다시 꺼내 쓰라는 요구는,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법률을 최종 해석하는 사법부에 법률 위반을 권하는 형국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반려 문서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정작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대통령의 반려는 문서로 존재하는가.

헌법 제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고 규정한다. 문서주의와 부서제도를 헌법이 직접 정한 것이다. 의사를 명확히 하고,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며,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부서로써 함께 책임지게 하려는 장치다. 문서 없이 한 국법상 행위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청와대가 대법원에 반려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보도된 바 없다. 8월 28일도, 9월 11일도 모두 대변인의 브리핑이었다. 상대의 서면 제청을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절차'라고 나무란 청와대가, 정작 자신의 반려는 서면조차 없이 구두 브리핑으로 한 것이다. 재제청 제도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근거 조문 대신 '임명권에 내포된 심사 재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지점에서 청와대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하고 동의안 제출을 거부한 것이 제청 절차를 종결시키는 법적 효과를 갖는 행위라면, 그것은 국법상 행위이므로 문서로 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했어야 한다. 부서한 문서가 없다면 헌법 제82조 위반이고, 반려는 효력이 없으며, 손 후보자에 대한 제청은 여전히 유효하게 살아 있다. 반대로 그것이 국법상 행위가 아니라 협의 차원의 '요청'일 뿐이라면, 법적 효력 없는 정치적 의사표시에 불과하므로 대법원장이 응할 이유가 없고 제청은 역시 살아 있다. 어느 길로 가든 결론은 같다. 제청은 존속하고, 존속하는 제청에 대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헌법상 행위는 동의안 제출뿐이다.

추천위원회를 재구성하는 것은 조용한 항복일 뿐이다

한 신문 사설은 대법원장이 신속히 추천위를 새로 꾸려 다시 제청하는 것이 정도라고 했다. 얼핏 원칙적으로 보이지만 그 끝에는 위험한 선례가 기다린다. 새 추천위가 후보를 올리고 대법원장이 제청했는데 대통령이 또 반려하면 어떻게 되는가. 또 새 추천위를 꾸리는가. 반려를 거듭하면 대통령이 원하는 이름이 나올 때까지 제청이 반복될 뿐이다. 그것은 제청권의 행사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제청권의 포기가 된다. 헌법이 준 권한이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할 때까지 다시 제출할 의무'로 바뀌는 순간 삼권분립의 첫 번째 톱니는 조용히 빠져나간다.

말로 싸우는 순간 사법부는 정치의 한 당사자가 된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대법원장이 회견을 열고 담화를 내고 여론에 호소하는 순간 사법부는 스스로 정치 논쟁의 한쪽 편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당은 '정치하는 대법원장'이라 부를 것이고, 야당은 '우리 편'으로 끌어안으려 들 것이며, 그 순간 대법원장의 말은 언론에서 정치인의 말로 비하될 것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사법부의 힘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절차를 지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에게 먼저 요구한다. 재제청을 원한다면 대변인의 입 뒤에 숨지 말고 정식으로, 서면으로,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를 갖추어 요구하라. 브리핑은 책임이 남지 않는 방식이다. 서면으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문서에 적을 근거 조문이 없기 때문이고, 근거 없는 요구를 역사의 증거로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문서주의를 명한 것은 바로 이런 회피를 막기 위해서다. 자신의 요구가 헌법에 맞는다고 확신한다면 부서한 문서 한 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장이 응답할 수 있는 상대는 문서로 된 국법상 행위뿐이다. 대변인의 입장 발표는 정치행위에 불과하고, 정치행위에 답하는 순간 대법원장도 정치행위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문서 없는 요구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침묵이다. 응하지 않는 것은 무시가 아니라, 법적 효력 없는 요구에 대한 정당한 무응답이다. 청와대가 정식 문서를 보내온다면 그때 대법원장은 비로소 응답할 수 있고, 그 응답은 회신 공문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권한쟁의심판청구여야 한다. 헌법 제111조가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을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도록 정해 둔 절차다. 부서한 국무위원의 이름과 근거 조문이 적힌 그 문서가 곧 증거가 될 것이다.



침묵,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법원장에게 두 가지를 권한다. 첫째, 말하지 말라. 청와대의 요구에 논평하지 말고, 여론전에 응하지 말고, 사법권 독립을 호소하는 훈시조차 삼가라. 제청권은 여론이 아니라 헌법이 준 것이므로 여론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둘째, 대통령의 서면 재제청을 기다렸다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라. 그 청구서가 이 사태에 대해 대법원장이 내놓는 유일한 문장이어야 한다. 문서가 끝내 오지 않는다면 제청은 그대로 살아 있고, 대법관 공석의 책임은 유효한 제청을 방치한 대통령에게 있다.

이 길의 미덕은 결과와 무관하게 남는 것이 있다는 데 있다. 헌재가 인용하면 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으로 확정되어 어떤 정권도 반복하기 어려워진다. 각하되거나 기각되더라도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어디까지인가'가 헌법재판소 결정문으로 헌정사에 기록된다. 어느 쪽이든 문제는 정치의 영역에서 헌법의 영역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 동안 대법원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부가 정치가 아니라 절차로 싸웠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청와대는 답해야 한다. 반려 문서에 부서한 국무위원은 누구인가. 없다면 반려는 없었던 것이다. 말은 청와대가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 대법원장에게 남은 것은 성명서가 아니라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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