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으로 본 대법관 임명제도의 변천
헌법으로 본 대법관 임명제도의 변천
Oct 1, 2026 · @이석화
들어가며
대법관을 누가 고르고 누가 임명하는가. 우리 헌법은 헌법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큰 흐름은 대통령 임명제 → 법조인 선거제 → 합의제 추천과 의무임명 → 대법원장 1인 제청 → 제청·국회동의·대통령 임명으로 변천되었다.
최근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지금의 헌법 제104조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 한 번 정리해 둘 필요를 느꼈다. 제도의 문언은 짧지만, 그 한 줄 한 줄에는 사법부와 권력 사이의 긴장이 새겨져 있다. 헌법 조문을 중심으로 그 변천을 살펴 본다.
한눈에 보는 변천
| 헌법 | 연도 | 명칭 | 대법원장 임명 | 대법관 임명 | 국회 관여 |
|---|---|---|---|---|---|
| 제헌헌법 | 1948 | 대법관 | 대통령 임명 + 국회 승인 | 헌법에 규정 없음(법원조직법) | 대법원장만 |
| 제2공화국 | 1960 | 대법관 | 법관 자격자 선거인단 선거 + 대통령 확인 | 대법원장과 같음 | 없음 |
| 제3공화국 | 1962 | 대법원판사 | 법관추천회의 제청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의무) | 대법원장 제청(추천회의 동의) → 대통령 임명(의무) | 대법원장만 |
| 유신헌법 | 1972 | 대법원장 아닌 법관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 | 대법원장 제청 → 대통령 임명 | 대법원장만 |
| 제5공화국 | 1980 | 대법원판사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 | 대법원장 제청 → 대통령 임명 | 대법원장만 |
| 현행 헌법 | 1987 | 대법관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 | 대법원장 제청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 | 둘 다 |
· 대법관 임명에 국회 동의가 붙은 것은 1987년이 처음이다.
· 대통령의 '임명 의무'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1962년 헌법이 유일하다.
1. 제헌헌법(1948) — 대법원장만 헌법에, 대법관은 법률에
제헌헌법은 대법원장만 헌법에 두고, 대법관 임명은 법률에 맡겼다. 제78조는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정했다.
대법관 임명 방식은 1949년 법원조직법에서 구체화되었다. 법관회의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였다. 미국식 포괄 임명권을 원한 이승만 대통령과, 사법부의 제청이 있어야 한다고 맞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사이의 타협이었다.
타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7년 말 김병로 대법원장이 퇴임하자 법관회의는 김동현 대법관을 후임으로 제청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법부의 제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이 경험은, 이후 헌법이 대통령 임명권을 묶어 두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
2. 제2공화국(1960) — 단 한 번의 선거제 실험
4·19 이후 제3차 개정헌법은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실험을 했다. 제78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이를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한다"고 정했다. 선거인단의 구성과 선거 절차는 법률에 맡겼고, 그 밖의 법관은 대법관회의 결의에 따라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여기서 대통령의 역할은 '임명'이 아니라 '확인'이다. 법조인 전체의 뜻으로 대법관을 뽑는 것이 사법 독립과 민주화를 함께 이루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선거는 실시되지는 못했고, 선거제는 헌법 문언으로만 남은 제도가 되었다.
3. 제3공화국(1962) — 법관추천회의와 '임명하여야 한다'
제5차 개정헌법은 명칭을 대법관에서 '대법원판사'로 바꾸고, 합의제 추천기구를 헌법에 올렸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장: 법관추천회의의 제청 → 대통령이 국회에 동의 요청 →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
대법원판사: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 →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
그 밖의 법관: 대법원판사회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법관추천회의: 법관 4인, 변호사 2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법률학 교수 1인,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핵심은 의무임명 조항이다. 제청이 있으면 대통령은 임명해야 하고, 거부할 길이 헌법상 막혀 있었다. 제헌기의 임명 거부 경험이 헌법 문언으로 응답을 받은 셈이다. 변호사 2인이 추천회의에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4. 유신(1972)·제5공화국(1980) — 제청권의 개인화
유신헌법은 법관추천회의를 없애고 제청권을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모았다. 제103조 제1항은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제2항은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했다.
제2항의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판사만이 아니라 하급심 판사까지 모두 포함한다. 전국의 모든 법관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넘어간 것이다. 실제로 유신 직후인 1973년 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국가배상법 조항에 위헌 의견을 냈던 대법원판사들이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대법원장 제청 → 대통령 임명'이라는 오늘날 대법관 임명 구조의 뼈대가 이때 만들어졌지만, 합의제 견제장치가 사라지면서 사법부 장악의 통로로 쓰였다.
제5공화국 헌법은 이 틀을 대부분 이어받았다. 다만, 일반 법관 임명권이 대법원장에게 돌아온 점은 달라졌지만, 대법원판사에 대한 국회 동의는 여전히 없었다.
5. 현행 헌법(1987) — 국회 동의라는 견제장치
1987년 헌법은 명칭을 다시 '대법관'으로 되돌리고, 대법관 임명에 국회 동의를 새로 넣었다. 제104조는 이렇게 정한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세 주체의 역할은 분명하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사법부 독립을, 국회 동의는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적 검증을, 대통령 임명은 행정부의 관여를 뜻한다. 유신과 5공에서 사라졌던 견제장치를 국회 동의라는 형태로 되살린 것이다.
그 뒤의 변화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 차원에서 일어났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에 따른 절차이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2011년 법원조직법에 근거를 두게 되었으며, 제청할 대법관 수의 3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 추천을 존중해 제청한다.
6. 실제로 부딪힌 사례들 — 어떻게 풀렸나
실제 인사과정에서 갈등이 제기된 적은 여러 번이다. 국회가 동의를 거부한 사례는 새 후보로 비교적 빨리 풀렸지만,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례는 헌법에 해결 절차가 없어 오래 끌었다.
| 연도 | 갈등 당사자 | 무슨 일이 있었나 | 어떻게 풀렸나 |
|---|---|---|---|
| 1958 | 대통령 ↔ 법관회의 | 이승만 대통령이 김병로 후임 대법원장으로 제청된 김동현 대법관의 임명을 거부 | 조용순 대법원장 임명으로 일단락. 이 경험이 1962년 헌법의 '임명하여야 한다' 조항으로 이어짐 |
| 1988 | 대통령 ↔ 국회 | 여소야대 국회가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을 부결(찬성 141, 반대 134). 헌정사 첫 대법원장 인준 부결 | 이일규 대법원장이 새로 지명돼 국회 동의를 받으며 해소 |
| 2003 | 대법원장 ↔ 법무부·변협·소장 법관 | 최종영 대법원장이 서열대로 제청하려 하자 자문위원이던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박재승 변협회장이 사퇴, 소장 법관들도 반발 | 서열대로 제청하는 대신 전효숙 판사를 첫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해 절충. 이듬해 김영란 첫 여성 대법관 제청 |
| 2012 | 국회 ↔ 대법원장 |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인사청문 과정의 의혹 끝에 사퇴 |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꾸려 새 후보 제청 |
| 2023 | 대통령 ↔ 국회 |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 부결(찬성 118, 반대 175). 35년 만의 부결로 대법원장 공백 발생 | 대통령이 조희대 후보를 새로 지명, 국회 동의를 받아 해소 |
| 2026 | 대통령 ↔ 대법원장 | 대법원장이 손봉기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8.18)하자 청와대가 사전 협의 부족을 들어 반려하고 재제청 요구(8.28). 대법원장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제청 거부(9.22) | 미해결(10.1 현재).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공석이 200일을 넘겼고,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 |
· 국회의 동의 거부는 새 후보 지명으로 풀렸지만, 대통령과 사법부가 부딪힌 경우는 헌법에 해결 절차가 없어 오래 끌었다.
1958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법관회의의 첫 제청 후보인 김동현 전 대법관을 거부하고 여당 정치인(이우익)의 제청을 압박하자, 사법부는 정권의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조용순 전 대법관(당시 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새로운 후보로 재제청하였고, 결국 절충안으로 타결되었다.
2026년은 아직까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치하는 상황이다.
1962년 헌법은 이 문제를 대통령의 '임명 의무'로 막았지만, 현행 헌법에는 그런 문장도, 반려 뒤의 절차도 없다. 정당 쪽에서는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추천위 관련 법 개정이 거론되고 있다.
맺으며 — 변천이 남긴 네 가지 물음
누가 후보를 고르는가.
법관회의(제헌기 법률) → 법조인 선거인단(1960) → 법관추천회의(1962) → 대법원장 1인(1972 이후)으로 옮겨 왔다.
현행 헌법은 제청 주체를 대법원장으로 두고, 법률로 추천위원회를 덧붙인 상태다.
대통령은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가.
1962년 헌법은 "임명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지만, 유신 이후 이 문장은 사라졌다.
그래서 대통령이 제청을 반려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지는 헌법 해석에 맡겨진 물음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관행으로 가려져 있던 이 공백이, 최근의 제청 반려 논란으로 다시 수면 위에 올라왔다.
국회는 어디까지 관여하는가.
제헌부터 5공까지 국회 동의는 대법원장에 한정되었다. 대법관에 대한 국회 동의는 1987년에야 생겼다.
이름은 왜 바뀌었는가.
대법관(1948) → 대법원판사(1962·1980) → 대법관(1987). 직무의 성격은 같았지만, 명칭의 부침은 최고법원의 위상이 정치 상황에 따라 흔들렸음을 보여 준다.
현행 제104조 제2항은 세 겹의 역사가 포개진 조항이다.
제헌 때부터 이어진 '사법부가 후보를 내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전통, 유신이 만든 '대법원장 개인 제청', 1987년 민주화가 더한 '국회 동의'가 그것이다.
문언은 1987년 이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지만, 그 빈칸을 어떻게 채울지는 여전히 우리 법조가 풀어야 할 숙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 역사는 사법부독립이라는 대원칙 아래 대통령의 '임명의무'를 두려고 해왔던 것은 사실이고,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에 이런 충돌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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