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VISA)는 약속입니다 — 네팔과 조지아가 우리에게 묻는 것
어제 저녁, 네팔에서 우리 국민 24명이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관광비자로 들어가 현지 기독교 교육기관의 종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이민국으로 넘겨졌고,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매일신문, 2026.10.12).
그분들은 아마 선한 마음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네팔 당국의 판단은 간단했습니다. "관광비자로는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다." 선의였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1년 전 장면도 떠오릅니다.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우리 기술자 317명이 허리에 쇠사슬을 차고 족쇄를 찬 채 끌려가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미국 당국이 내세운 이유 역시 같았습니다. "그 비자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비자 문제로 붙잡히면 우리는 "너무 가혹하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비자 목적을 어기면 "왜 제대로 단속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두 감정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원칙을 가리킵니다. 비자는 약속이고, 약속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원칙을 우리 국민, 사회,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 해외로 출장·선교·봉사를 떠나는 우리 국민에게: 네팔과 조지아의 일이 내 일이 되지 않도록.
- 외국인 정책을 걱정하는 우리 사회에게: 불안과 분노를 넘어 실제로 효과 있는 해법을 찾도록.
- 한국에 오는 외국인에게: 몰라서 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비자는 '입국 허가'가 아니라 '목적의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자를 "그 나라에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으로 생각합니다. 법적으로는 조금 다릅니다. 비자는 "이 목적으로, 이 기간 동안만 머물러도 된다"는 조건부 허락입니다. 국가는 그 목적을 보고 심사해서 들여보냈으니, 목적을 바꾸면 허락의 전제가 무너집니다.
한국 출입국관리법도 같습니다. 외국인은 받은 체류자격과 체류기간의 범위 안에서만 머물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제17조). 일을 하려면 취업이 허용된 자격이 있어야 하고(제18조), 본래 자격 밖의 활동은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제20조). 어기면 형사처벌과 강제퇴거(제46조), 그리고 이후 입국금지가 따를 수 있습니다. 무자격 외국인을 고용하거나 알선한 한국인도 처벌됩니다.
한국 비자의 종류와 각 비자로 할 수 있는 일을 표로 정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분은 "그 비자로 돈을 벌 수 있는가"입니다.
| 코드 | 명칭 | 할 수 있는 일 | 취업 | 자주 문제되는 위반 |
|---|---|---|---|---|
| B-1 / B-2 | 사증면제 / 관광통과 (제주 무사증 포함) | 관광·통과 등 단기 체류. 제주 무사증은 최장 30일, 제주 밖 이동 불가 | 불가 | 기간 초과 체류, 제주 무단이탈 후 불법취업 |
| C-3 | 단기방문 | 관광, 친지방문, 회의·상담·시장조사 등 수익 없는 활동(통상 90일 이내) | 불가 | 관광 입국 후 잠적·취업, 목적 외 활동 |
| C-4 | 단기취업 | 강연, 광고모델, 기술지도 등 단기 유급활동 | 제한적 가능 | 허가된 활동 외 근무 |
| D-2 | 유학 | 전문대 이상 학위과정 수학·연구 | 원칙 불가 (허가받은 시간제 근무만) | 무허가 아르바이트, 학업 이탈 |
| D-4 | 일반연수 | 어학연수 등 비학위 연수 | 원칙 불가 (요건 충족 시 시간제 허가) | 연수기관 이탈 후 취업 |
| D-8 / D-9 | 기업투자 / 무역경영 | 투자기업 경영, 무역·사업 경영 | 해당 사업 범위 내 | 명목상 투자 후 다른 일 |
| D-10 | 구직 | 전문분야 구직활동 | 원칙 불가 (인턴 등 예외) | 구직 명목 단순노무 |
| E-1~E-7 | 교수·회화지도·연구·기술지도·전문직업·예술흥행·특정활동 | 허가받은 직종·직장에서 근무 | 가능 (지정 직장) | 허가 외 직장 근무, 부업 |
| E-8 | 계절근로 | 농어업 계절 노동 | 가능 (지정 사업장) | 사업장 이탈 |
| E-9 | 비전문취업 (고용허가제) | 제조·건설·농축산·어업 등 지정 업종 | 가능 (지정 사업장) | 사업장 무단변경·이탈 |
| H-2 | 방문취업 | 외국국적동포의 지정 업종 취업 | 가능 (지정 업종) | 허용 업종 외 취업 |
| F-2 | 거주 | 장기 거주 | 대체로 자유 | — |
| F-4 | 재외동포 | 장기 체류·취업 (단순노무 등 일부 제한) | 대부분 가능 | 제한 업종 취업 |
| F-5 | 영주 | 활동 제한 없음 | 자유 | — |
| F-6 | 결혼이민 |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생활 | 자유 | 위장결혼 |
| G-1 | 기타 (난민신청자 등) | 사안별로 인정된 체류 | 원칙 불가 (허가 시 가능) | 허위 난민신청을 통한 취업 |
※ 주요 자격만 추린 것입니다. 세부 요건은 수시로 바뀌므로 법무부 하이코리아에서 최신 안
우리가 당했을 때 — 한국인의 해외 비자 위반
먼저 우리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비자 위반은 한국에 오는 외국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 시기 | 나라 | 입국 자격 | 실제 활동 | 결과 |
|---|---|---|---|---|
| 2026.10 | 네팔 | 관광비자 | 기독교 교육기관의 종교 훈련 프로그램 참여 | 24명 체포, 이민국 인계, 추방 절차 (매일신문) |
| 2025.9 | 미국 (조지아) | 무비자 ESTA 170명, B-1·B-2 비자 146명 |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근무 | 한국인 317명 체포·구금, 약 1주일 뒤 전세기 귀국 (쿠키뉴스) |
| 2016 적발 | 일본·캐나다·미국·호주 | 관광 목적 무비자 | 성매매 업소 취업 | 알선 사채업자 등 3명 구속, 여성 44명 입건. 일본 재입국을 거부당한 여성은 다른 나라 업소로 보내짐 (경향신문) |
조지아 사태를 다시 들여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구금된 317명 가운데 170명은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로, 146명은 단기 상용·관광(B-1·B-2) 비자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미국에 지사가 없는 협력업체는 주재원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단기 출장 자격으로 사람을 보내는 관행이 굳어져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쿠키뉴스).
족쇄까지 채운 것은 분명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업계 안에서도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나왔고, 원인을 우리가 먼저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도 있었습니다(경인일보). 이후 한미 비자 워킹그룹이 꾸려졌고, 미국은 해외에서 산 장비를 설치·점검·보수하고 현지 인력을 교육하는 일은 B-1 비자나 ESTA로도 할 수 있다고 확인했습니다(시대일보). 무엇이 허용되는지 미리 정확히 알았다면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세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이렇습니다.
- 목적이 선해도 위반은 위반입니다. 선교도, 회사 출장도 그 나라 비자의 범위를 벗어나면 위법입니다.
- "다들 그렇게 해 왔다"는 보호막이 되지 못합니다.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대규모 구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 한 번의 위반이 다음 입국을 막습니다. 입국 거부 기록은 오래 따라다닙니다.
우리 땅에서는 — 한국에서 일어나는 비자 위반
이번에는 거꾸로 보겠습니다. 2025년 말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2,783,247명이고, 불법체류자는 357,598명입니다(법무부, 2026년 외국인정책 시행계획). 국적별로는 한국계 동포를 포함한 중국 국적자가 980,670명(35.2%)으로 가장 많지만, 이들 대부분은 재외동포·영주·방문취업 등 합법 자격으로 사는 동포와 그 가족입니다.
| 유형 | 입국 자격 | 사례 | 결과 |
|---|---|---|---|
| 관광객 위장 입국 후 불법취업 | 사증면제 | 태국 현지 여행사 브로커가 허위 관광 일정표와 입국심사 답변을 합숙 훈련시켜 80명을 입국시킨 뒤 농장 등에 알선, 1인당 약 250만 원 수수 (2022~2023) | 브로커 구속, 고용 농장주 입건, 적발 취업자 퇴거 (파이낸셜뉴스) |
| 제주 우회 입국 시도 | 제주 무사증 | 전자여행허가(K-ETA)가 필요 없는 제주로 우회 입국 시도, 이틀간 태국인 220명 입국 거부 (2022.8) | 입국 거부, 마중 나온 불법체류자 2명 적발 (경향신문) |
| 제주 무사증 이탈·불법취업 | 제주 무사증 | 무사증으로 입국한 중국인 4명을 공항에서 곧장 서귀포 수산물가공공장에 알선 (2023) | 브로커 검거 (파이낸셜뉴스) |
| 군사시설 드론 촬영 | 유학 | 중국인 유학생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와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9차례 촬영, 사진 172장·영상 22개 (2023~2024) | 주범 징역 1년 6개월(일반이적), 공범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2026.6) (서울신문) |
| 공군기지 촬영·감청 시도 | 관광비자 | 중국 고교생 2명이 한미 군사시설 4곳·국제공항 3곳에서 전투기 수백 차례 촬영, 관제 무전 감청 시도 (2024~2025) | 징역 장기 2년·단기 1년 6개월 및 징역 2년 — 외국인 일반이적죄 첫 유죄 판결 (2026.5) (서울신문) |
가장 흔한 위반: 관광객으로 들어와 일하기
숫자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무비자로 입국한 뒤 눌러앉아 일하는 경우입니다. 2023년 말 불법체류자 가운데 사증면제로 들어온 사람이 약 16만 9천 명이었고, 그중 태국 국적자가 약 14만 5천 명(76.3%)이었습니다(아세안익스프레스). 현지 브로커가 지원자를 모아 관광객처럼 보이도록 옷차림과 입국심사 답변까지 훈련시키고, 입국하면 농장·공장·마사지업소로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제주 무사증은 또 다른 통로입니다. 제주 무사증으로 들어와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은 2025년 8월 말 10,738명이고, 이 경로에서는 중국 국적이 9,100명(85%)으로 대부분입니다(파이낸셜뉴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드러납니다. 무비자 불법체류는 태국 국적이, 제주 무사증 이탈은 중국 국적이 가장 많습니다. 위험은 특정 국적보다 입국 경로를 따라 움직입니다.
더 심각한 위반: 관광·유학생 신분으로 군사시설 촬영
안보와 직결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1년 넘게 해군작전사령부와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했고, 수원에서는 관광비자로 들어온 중국 고교생들이 공군기지와 국제공항을 돌며 전투기를 수백 차례 찍고 관제 무전까지 감청하려 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2026년 법원에서 일반이적죄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수원 사건은 외국인에게 일반이적죄를 적용한 첫 유죄 판결입니다(서울신문).
그동안 이런 행위를 간첩죄로 다스리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개정 전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한 간첩만 처벌했는데, 우리 법상 적국은 사실상 북한뿐이었습니다. 이 빈틈은 2026년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형법 개정으로 메워졌습니다. 이제는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다음뉴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1. 해외로 떠나는 우리 국민이 꼭 확인할 것
- 가서 할 일과 비자를 맞춰 보세요. 관광비자나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라도, 일·설치 작업·강의·선교·봉사는 별도 비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 회사 출장이라면 업무 범위를 문서로 확인하세요. "회의만 한다"고 말하고 현장 작업을 하면 그 자체가 허위 진술이 됩니다.
- 종교·봉사 단체 활동이라면 그 나라의 종교 관련 법을 먼저 보세요. 네팔처럼 개종 권유를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 모르면 묻고 떠나세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누리집과 방문국 대사관 안내를 확인하고, 현지에서 문제가 생기면 영사콜센터(+82-2-3210-0404)에 연락하세요.
2. 우리 정부에 바라는 것 — 국적이 아닌 경로와 행위로
비자 목적과 실제 활동이 맞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데 저는 동의합니다. 지금의 단속은 신고나 우연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수원 사건도 주민의 신고가 없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점검의 기준은 '국적'보다 '입국 경로와 체류자격'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앞에서 보았듯 위험은 경로를 따라 움직입니다. 또 특정 국적 전체를 겨냥하면 평등원칙과 우리나라가 가입한 인종차별철폐협약 위반 시비가 생기고, 성실하게 사는 다수의 동포·외국인까지 등을 돌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조지아에서 우리 국민이 받은 대우에 분노했던 우리가 같은 방식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 무비자 경로 전수 사후확인: 제주 무사증과 단체관광 무비자 입국자는 출국 여부를 전원 대조하고, 미출국자는 즉시 추적한다.
- 유학·연수생 학사 연계 점검: 대학·어학원의 출석·학적 자료를 출입국 당국과 정기적으로 연계한다.
- 군사시설 주변 상시 감시: 국적과 관계없이 군사기지·공항 인근의 무허가 촬영과 드론 비행을 감시하고, 개정 간첩법을 엄정하게 적용한다.
- 고용주·브로커 처벌 강화: 불법취업은 고용과 알선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수요 쪽을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3. 한국에 오는 외국인에게 (Quick Guide for Visitors)
- 비자는 목적의 약속입니다. 받은 체류자격으로 허용된 일만 할 수 있습니다.
Your visa is a promise of purpose. Do only what your status allows. - 관광·무비자로는 돈을 벌 수 없습니다. 하루 아르바이트, 현금 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No paid work of any kind on a tourist or visa-free entry — not even a single day. - 유학생은 일하기 전에 허가부터 받으세요.
Students need permission before any part-time job. - 제주 무비자는 제주에서만. 최장 30일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Jeju visa-free entry means Jeju only, up to 30 days. - 군사시설·공항 주변 촬영과 드론은 금지입니다. "취미였다"는 말은 처벌을 막아 주지 못합니다.
Never photograph or fly drones near military bases or airports. "It was a hobby" is no defense.
궁금하면 출입국·외국인 상담센터(국번 없이 1345, 다국어)나 하이코리아에 먼저 물어보세요.
When in doubt, call 1345 (multilingual Immigration Contact Center) or visit HiKorea.
맺으며 — 같은 잣대로
네팔에서 붙잡힌 우리 국민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이 일을 계기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우리 국민을 공정하게 대해 달라"고 요구하려면, 우리도 한국에 온 외국인을 공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느슨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국적과 관계없이 환영하고, 규칙을 어긴 사람은 국적과 관계없이 반드시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비자는 국경에서 맺는 작은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우리가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게 하는 것. 그것이 법치국가 국민으로서 우리가 외국에서 존중받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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