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보다 앞선 법정의 말 - 가스코인 대법원장과 헨리 왕자

 칼을 이겨낸 판사의 말

가스코인 대법원장과 헨리 왕자

2026년 10월 5일 · 이석화

왕자의 칼보다 법정의 말이 앞섰던 이야기가 있다. 600년 전 영국의 한 재판장이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왕자를 감옥에 가두었다는 일화다.

『법창야화』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법정에 선 지 스물여섯 해가 되었지만, 법관의 자세를 이만큼 또렷이 보여 주는 이야기는 드물다. 요즘 우리 법원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옮겨 적어본다.


이야기의 출처

『법창야화』와 호즈미 노부시게

『법창야화(法窓夜話)』는 일본의 법학자 호즈미 노부시게(穂積陳重, 1855–1926)가 1916년에 펴낸 법률 일화집이다. 동서고금의 법에 얽힌 이야기 백 편을 모은 책으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법률가의 교양서로 읽힌다.

호즈미는 메이지 초기에 영국과 독일에서 유학했다. 런던의 미들 템플에서 법정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귀국한 뒤 도쿄제국대학 법과 교수가 되었다. 일본 민법전을 기초한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며, 말년에는 추밀원 의장을 지냈다. 영국에서 법을 배운 사람이라, 가스코인 이야기는 그가 젊은 날 직접 접한 영국 법조의 전승이었을 것이다.

토머스 엘리엇의 『통치자』

호즈미가 인용한 원전은 토머스 엘리엇 경(Sir Thomas Elyot, 약 1490–1546)의 『통치자』(The Boke Named the Governour, 1531)이다. 헨리 8세에게 헌정된 책으로, 장차 나라를 다스릴 귀족 자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다룬 교육·정치 교훈서이다.

『법창야화』는 이 책이 헨리 5세가 승하한 직후에 쓰였다고 적고 있으나, 실제로는 헨리 5세 사후 100여 년 뒤의 책이다. 당대의 재판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정리된 교훈담이다.

주인공 윌리엄 가스코인

윌리엄 가스코인 경(Sir William Gascoigne, 약 1350–1419)은 헨리 4세 치세인 1400년부터 왕좌재판소(King's Bench)의 수석재판관을 지냈다. 오늘날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법정에 뛰어든 왕자

훗날 헨리 5세가 되는 왕자가 아직 젊던 때의 일이다. 왕자의 측근이 죄를 지어 왕좌재판소에 섰다. 소식을 들은 왕자는 법정으로 달려와 피고인을 당장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가스코인 재판장은 조용히 길을 일러 주었다. 그 신하가 왕국의 법대로 처벌받는 것을 받아들이시되, 법이나 재판이 가혹하다고 여기신다면 부왕께 특별사면을 청하시라는 것이었다.

왕자는 듣지 않고 피고인의 손을 잡아 끌고 나가려 했다. 재판장이 큰 소리로 퇴정을 명하자, 왕자는 칼자루에 손을 얹고 재판석으로 다가섰다.

가스코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의 뜻은 이렇다.

전하, 지금 제가 국왕 폐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폐하는 전하의 아버지이자 군주이시니, 전하는 이중으로 복종할 의무를 지고 계십니다. 폐하의 이름으로 이 폭거를 금합니다. 장차 전하의 신하가 될 이들에게 법을 지키는 본을 몸소 보이십시오. 전하는 이미 법정을 모욕하셨으니, 왕좌재판소의 감옥에 가두고 폐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왕자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고는 칼을 내려놓고 재판장에게 고개를 숙인 뒤, 제 발로 구류실로 걸어 들어갔다.

전말을 들은 헨리 4세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다고 엘리엇은 전한다. 정의를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관과, 그 정의를 감내하고 따를 줄 아는 아들을 함께 주셨다는 감사였다.

후대의 책들은 이 말을 이렇게 줄여 전한다. “법을 집행할 용기를 가진 법관을 둔 왕은 행복하다. 그 법을 어겼을 때 벌을 받아들이는 아들을 둔 왕은 더욱 행복하다.”

연대기에서 무대로

엘리엇의 책에 실린 이 일화는 두 갈래 길을 따라 영국인의 상식이 되었다.

홀린셰드의 『연대기』

라파엘 홀린셰드(Raphael Holinshed)가 여러 필자와 함께 엮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연대기』는 1577년에 초판이, 1587년에 증보판이 나온 방대한 통사이다.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자기 나라 역사를 배우던 책이었다.

이 연대기에서 이야기는 한층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왕자가 칼자루에 손을 얹는 데 그치지 않고 재판장을 주먹으로 쳤고, 그 일로 감옥에 갇혔으며, 부왕 헨리 4세가 왕자를 추밀원에서 내보내고 그 자리에 동생 토머스를 앉혔다고 적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셰익스피어는 홀린셰드의 연대기를 사극의 밑그림으로 삼았다. 『헨리 4세』는 1부와 2부로 된 사극으로 1590년대 후반에 쓰였다. 폴스타프 무리와 어울려 방탕하게 지내던 핼 왕자가 왕위에 올라 헨리 5세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투옥 장면 자체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대사로만 언급된다. 셰익스피어가 힘을 준 곳은 그 뒷이야기인 2부 5막 2장이다. 부왕이 죽고 왕자가 즉위하자 대법원장은 보복을 각오한다. 새 왕이 그날의 모욕을 어찌 잊겠느냐고 묻자, 대법원장은 자신이 국왕의 권위를 대신해 법을 집행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새 왕은 그의 손을 잡고 직을 그대로 맡기며, 자신의 젊음에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청한다.

역사와 전승 사이

당대의 재판 기록이나 연대기에서는 이 투옥이 확인되지 않는다. 실제의 가스코인은 헨리 5세가 즉위한 1413년에 곧 수석재판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를 실화보다는 후대의 모범담으로 보는 쪽이 많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5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사실의 세목보다, 법관은 누구 앞에서도 법을 굽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사람들이 간직하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관이 취할 자세

이 일화에서 법관의 자세는 네 가지로 모인다.

첫째, 신분이 재판의 순서를 바꾸지 못한다. 가스코인은 왕자를 모욕하지 않았고 사면의 길도 알려주었다. 다만 그 길은 법정을 향한 명령이 아니라 국왕의 은전이었다. 석방과 유죄, 형의 경중은 당사자의 지위가 아니라 법과 심리로 정한다는 선이 분명했다.

둘째, 위협 앞에서도 법정의 권위를 지켰다. 칼자루에 손이 가는 것을 보고도 그는 퇴정을 명하고 구금을 선언했다. 그 용기는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앉은 자리가 한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법을 맡은 공적 자리임을 잊지 않은 데서 나왔다.

셋째, 벌은 보복이 아니라 본보기이다. 그는 왕자에게 장차 신하가 될 이들 앞에서 법을 지키는 본을 보이라고 했다.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 법을 어겼을 때 그 처리가 곧 공동체의 기준이 된다. 통치자가 스스로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일 때, 피통치자들도 스스로 법을 지킬 마음이 생긴다는 교훈을 준다.

넷째, 승복이 있어야 독립이 완성된다. 왕자는 굴욕을 참고 제 발로 구류실에 들어갔고, 국왕은 그것을 치욕이 아니라 은혜로 받았다. 법관의 독립은 재판장 한 사람의 기개로 끝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쪽이 판결을 견디고, 그 견딤을 미덕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제도가 된다.

봐주기는 쉽고, 처벌은 어렵다

법관이나 검사 같은 법률가에게 권력자를 처벌하지 않는 일은 쉽다. 그러나 권력자를 처벌하는 일은 어렵다. 가스코인이 왕자의 명령대로 피고인을 풀어 주었다면 그는 아무 위험에도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칼 앞에서 구금을 선언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600년을 건너온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특정인 한 사람을 처벌하려고 불법수사를 했다느니, 판사들이 거기에 동조했다느니 하면서 판사와 검사를 매도하는 말이 넘쳐난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권력자를 봐주는 것이야말로 권력에 굴복하는 비굴함이다. 권력자에게도 법의 칼을 들이댄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칭송을 받아야 한다.

수사와 재판에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을 다투는 길은 법정 안에 있다. 증거로 다투고 상소로 다투면 된다. 가스코인이 왕자에게 일러 준 것도 바로 그 길이었다. 법정 밖에서 판사와 검사를 겁박하는 것은 왕자가 칼자루에 손을 얹은 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자를 수사하고 재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률가를 단죄하는 논리는 결국 사법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 뒤에는 누구도 권력자 앞에서 법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논리는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법관들의 표상으로

오늘 우리 법정에 칼을 차고 들어오는 왕자는 없다. 그러나 칼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이다. 권력의 눈길, 재력의 무게, 들끓는 여론, 진영의 압박이 재판석을 향해 다가선다.

재벌이든 고위공직자이든 정치인이든, 법정 안에서는 당사자일 뿐이다. 결과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상소가 있고 사면이 있고 입법이 있다. 검사나 재판장은 그 절차를 건너뛰라는 요구에 응하는 자리가 아니다.

가스코인의 말은 오늘의 법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자리는 어느 한 사람의 뜻이 아니라 법의 자리다.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신분과 상관없이 같은 절차가 돌아가야 한다.

재판을 받는 쪽, 그리고 재판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몫도 있다. 헨리 4세가 감사한 것은 용기 있는 법관만이 아니다. 그 재판에 승복한 아들이기도 했다.

변호사로 법정을 드나들며 나는 그런 법관을 여러 분 보았고,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많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의 판사들이 가스코인을 표상으로 삼아 주기를 바란다. 왕자가 칼을 내려놓은 장면보다, 재판장이 칼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은 장면이 먼저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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