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중계하는 나라 — 사형제도와 집행방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두 개의 뉴스

지난 열흘 사이 미국에서 사형과 관련한 뉴스 두 건이 잇달아 전해졌다. 하나는 사형을 집행하려다 실패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사형 집행을 온 국민에게 보여 주겠다는 이야기다.

첫째는 테네시주다. 9월 30일, 1995년 직업학교 동급생 콜린 슬레머(당시 19세)를 잔혹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이 확정된 크리스타 파이크(50세)에 대한 약물주입 집행이 있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펜토바르비탈이 두 차례 투여되었는데도 그녀는 숨을 거두지 않았다. 팔이 아프고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한 뒤 의식을 잃은 듯 보였으나 한 시간 가까이 코 고는 소리를 내며 호흡을 이어 갔고,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변호인은 왼팔에서만 바늘 자국을 최소 일곱 군데 확인했다고 한다. 사형정보센터(DPIC)는 약물이 실제 투여된 뒤에도 살아남은 사례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테네시는 넉 달 전인 5월에도 토니 카루더스의 정맥을 한 시간 넘게 찾지 못해 집행을 중단한 바 있다. 빌 리 주지사는 이번 일을 두고 몹시 충격적이라며 연내 남은 집행을 멈추고 외부 독립 조사를 지시했다.

둘째는 국방부다. 2009년 텍사스 포트후드 기지에서 동료 군인 등 13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다치게 한 전 육군 군의관 니달 말릭 하산에 대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사형 집행을 승인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12월 3일 포트후드에서 총살형으로 집행하며 국민이 지켜볼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10월 8일 이를 생중계하겠다고 확인했다. 장관은 범행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서, 범행과 같은 목요일 오후 1시에 군인들이 소총으로 집행할 것이며 총살형을 택한 것은 고민할 것도 없는 결정이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승인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으나, 생중계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는 중이라고도 말해 최종 확정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미군의 사형 집행은 1961년 이후 65년 만이고, 총살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한쪽에서는 '인도적'이라던 방법이 사람을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 채 실패했고, 다른 쪽에서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가장 현대적인 매체로 내보내겠다고 한다. 두 뉴스로 사형제도를 둘러싼 오래된 찬반론에 새 질문이 더해졌다. 사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집행할 것인가.

사형 존치론 —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존치론의 뿌리는 응보다. 고의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응보론자에게 사형은 복수가 아니라, 피해자의 생명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를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일이다.

둘째는 억제다. 극형의 위협이 잠재적 살인자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장은 실증의 벽 앞에서 힘을 잃는다.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RC)는 2012년 보고서에서 기존 연구들로는 사형이 살인을 줄이는지, 늘리는지, 영향이 없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주요 범죄학자의 88%가 억제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2009년 조사도 있다.

셋째는 재범의 원천 차단이고, 넷째는 피해자 유족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흉악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이 정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형 폐지론 —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폐지론의 가장 강한 논거는 오판이다. 재판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은 언제든지 틀릴 수가 있다. 미국에서는 1973년 이후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200명을 넘었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의 약 4%가 무죄일 수 있다는 추정 연구(2014년)도 있다. 징역형은 재심으로 바로잡고 보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집행된 사형은 되돌릴 방법이 없다.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 온 나는 이 논거의 무게를 안다. 판결문에 적힌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도, 우리가 요구하는 엄격한 증명도 언제나 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불평등이다. 누가 사형수가 되는가는 죄질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인종, 재산, 변호인의 역량,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는 지적이 미국에서 끊이지 않았다.

셋째는 인간의 존엄이다. 베카리아가 250여 년 전에 물었듯, 살인을 금지하는 국가가 스스로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살인이 오히려 사회를 폭력에 무디게 만든다는 이른바 야만화 효과, 수십 년 걸리는 불복 절차 탓에 종신형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현실론이 더해진다.

집행방법 — '인도적 사형'이라는 약속

사형 집행의 역사는 덜 잔혹해 보이는 방법을 찾아온 역사다. 교수형에서 전기의자로, 가스실로,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약물주입으로 옮겨 왔다. 그런데 애머스트대 오스틴 사라트 교수가 189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사형 집행을 분석한 결과는 '덜 잔혹'이라는 전제를 의심케 한다.

집행방법 실패·사고 비율(1890~2010) 주요 쟁점
약물주입약 7.1%정맥 확보 실패, 약물 누출, 의료인 참여 거부, 약물 조달난
가스약 5.4%장시간의 고통, 최근 질소 질식 방식 논란
교수약 3.1%낙하 거리 계산 착오에 따른 질식·참수
전기약 1.9%화상, 신체 훼손
총살0% (34건)표본이 적음, 신체 훼손과 시각적 잔혹성

출처: Austin Sarat, Gruesome Spectacles (2014)

가장 '의료적'으로 보이는 약물주입이 실패율이 가장 높다. 의사들은 직업윤리상 집행 참여를 거부하고, 제약회사들은 약물 공급을 끊었으며, 주 정부는 조달 경로와 집행 절차를 비밀에 부쳤다. 파이크 사건은 그 끝에서 일어난 일이다. 환자를 살리는 도구로 사람을 죽이려는 모순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집행방법에 관대했다. 1879년 윌커슨 판결에서 총살형을 합헌으로 보았고, 2008년 베이즈, 2015년 글로십, 2019년 버클루 판결을 거치며 사형수가 집행방법의 위헌을 주장하려면 고통이 현저히 적고 실행 가능한 대안까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는 법리를 세웠다. 헌법이 고통 없는 죽음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총살형이 오히려 덜 잔인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2017년 반대의견에서 총살이 비교적 빠르고 고통이 적을 수 있다고 했고, 유타·사우스캐롤라이나·아이다호 등이 총살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총살도 완전하지 않다. 202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집행된 총살형에서는 총탄이 심장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는 부검 소견이 변호인 측에서 제기되었다.

결국 문제는 고통의 길이만이 아니다. 약물주입은 죽음을 잠든 것처럼 보이게 하여 집행하는 쪽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고, 총살은 국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여러 발의 총탄으로 파괴하는 방식을 형벌로 삼는 것이 문명국가의 품위에 맞는가.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는 여전히 화두다.덜 아프다는 것과 인간답게 대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공개처형 — 90년 전에 닫은 문

미국의 마지막 공개처형은 1936년 8월 켄터키주 오웬즈버러에서 있었던 레이니 베시아의 교수형이다. 약 2만 명이 몰려들어 축제처럼 구경했고, 그 광경에 대한 부끄러움이 공개처형을 끝냈다. 이후 미국의 사형은 교도소 담장 안에서, 제한된 증인 앞에서만 집행되었다. 2001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범 티머시 맥베이의 집행 때에도 유족과 생존자 200여 명에게 폐쇄회로로 보여 주었을 뿐, 인터넷으로 중계하게 해 달라는 요청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헤그세스 장관의 계획은 이 90년의 합의를 정부 스스로 깨는 것이다. 찬성 논리가 없지는 않다. 포덤대 데버라 데노 교수는 생중계가 사형의 실상을 투명하게 알리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면 국민이 보아야 한다는 논리는 폐지론자들도 오래전부터 펴 왔다.

그러나 이번 계획의 목적은 성찰이 아니라 과시에 가깝다. 버클리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세멜 교수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처형을 중계하겠다고 한 전례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그 동기를 물었다. 나는 다음 네 가지 이유에서 이 계획이 비윤리적이라고 본다.

  1.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다. 형벌은 죄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죽어 가는 사람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겁주는 데 쓰는 순간, 사형수는 인격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응보론의 원조인 칸트가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억제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하산은 재판 중에 처형되면 순교자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사람이다. 생중계는 그가 원하던 무대를 국가가 마련해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3. 보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처형 영상은 한 번 송출되면 영원히 인터넷을 떠돈다. 아이들도 본다. 1936년에는 2만 명이었지만 이번에는 수억 명이다. 공개처형이 군중을 숙연하게 하기보다 흥분시켰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보여 주었다.
  4. 스스로 비난해 온 일을 하게 된다. 국제앰네스티가 2025년에 확인한 공개처형은 이란 11건, 아프가니스탄 6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올해 초 이란의 처형을 강하게 비난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공개처형이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처우를 금지한 규약 제7조에 어긋난다고 본다.

종교계의 반응도 같은 방향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10월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사형은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은 생중계 계획을 두고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코클리 대주교는 공개처형이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훼손하고 국민의 양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미 정부는 범행 장소에서 범행 시각인 오후 1시에 맞추어 집행하겠다고 한다. 형의 집행이 아니라 연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중계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지상파로는 송출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고, 주요 방송사들은 중계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메타는 사형 집행 생중계를 금지하고 있고 틱톡도 사람이 죽는 순간을 담은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는다. 민간 기업의 콘텐츠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을 정부가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하산의 범행은 용서하기 어렵다. 무장하지 않은 동료들을 등 뒤에서 쏘았다. 사형 존치론에 선다면 그에 대한 사형 선고 자체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총살로, 그것도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집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당인 공화당 안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하산은 사형을 받아야 하지만 처형을 생중계하는 것은 역겹기 짝이 없는 일이고, 공개처형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같은 독재국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원 군사위원회의 오스틴 스콧 의원은 사형 선고는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처형을 생중계하는 것은 지하디스트들이 하는 일이며 미국은 그보다 나은 나라라고 했다.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은 공개처형이 하산에게 그가 바라던 순교자의 지위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고, 존 커티스 상원의원도 재고를 촉구했다. 밴스 부통령은 사형 자체는 정당하다면서도 자신은 그 장면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공개처형이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인 처우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생중계 여부는 결정하는 중이라면서도, 어떻게 죽든 상관없고 처형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들조차 고개를 젓는다는 사실이 이 계획의 성격을 말해 준다.

세계는 어디에 서 있는가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113개국, 법률상 또는 사실상 폐지한 나라는 145개국이다. 그런데 같은 해 집행 건수는 17개국에서 최소 2,707건으로 198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집행하는 나라는 줄어드는데 소수의 나라가 더 많이 집행하는 것이다. 중국·북한·베트남의 수치는 이 통계에 들어 있지도 않다.

나라 제도 집행방법 공개 여부·특징
한국존치, 1997년 이후 미집행교수(군인은 총살)비공개, 실질적 폐지국
미국연방·군과 27개 주 존치약물주입 위주, 일부 주 질소·총살·전기제한된 증인 앞 비공개
일본존치, 2025년 집행 재개교수비공개, 당일 아침 본인에게 통보
중국존치, 세계 최다 추정총살·약물주입통계는 국가기밀
북한존치총살·교수공개처형 보고 다수
이란존치교수2025년 공개처형 11건
사우디아라비아존치, 2025년 356건참수마약범죄에도 광범위 적용
싱가포르존치교수마약범죄 중심
대만존치, 2025년 집행 재개총살비공개
러시아존치, 1996년 이후 집행 정지—모라토리엄
독일1949년 기본법으로 폐지—헌법에 폐지 명시
프랑스1981년 폐지—1939년 마지막 공개 단두대, 2007년 헌법에 명시
영국1965년 정지, 1998년 전면 폐지—유럽인권협약 체제

출처: 국제앰네스티 2025년 사형 통계 및 각국 법령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다. 유럽은 사형 폐지를 유럽연합 가입 조건으로 삼을 만큼 논쟁을 끝냈다. 그리고 지금 공개처형을 하는 나라는 북한, 이란, 아프가니스탄 정도다. 미국이 12월에 들어서려는 자리가 바로 거기다.

우리의 자리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형법 제66조는 사형을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하여 집행한다고 정하고, 군형법 제3조는 군인에 대한 사형을 총살로써 집행한다고 정한다. 총살형은 우리 법전에도 살아 있다. 다만 형사소송법 제467조는 검사나 교도소장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집행 장소에 들어갈 수 없게 하여 비공개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집행을 마지막으로 29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우리를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제도는 살아 있다. 법원은 지금도 사형을 선고하고, 2016년 GOP 총기 난사 사건의 임 병장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것을 마지막으로 50여 명의 사형확정자가 수용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오판의 역사가 있다. 1959년 조봉암은 간첩죄 등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1975년 4월 9일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 8명이 대법원 판결 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처형되었고, 2007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되었다. 국제 법조계가 '사법 암흑의 날'이라 부른 사건이다. 무죄 판결문은 유족에게 전달되었을 뿐, 당사자들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오판의 비가역성은 우리에게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사형제도를 합헌이라고 했다. 1996년 결정(95헌바1)은 재판관 7 대 2였는데, 다수의견조차 사형이 우리 문화 수준과 사회 현실에 비추어 지금 당장 무효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어서 시대가 바뀌면 폐지되어야 한다는 여지를 남겼다. 2010년 결정(2008헌가23)은 5 대 4로 간격이 좁혀졌다. 2019년 제기된 세 번째 헌법소원(2019헌바59)은 2022년 7월 공개변론까지 열었으나 2025년 말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해 헌재의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혔다.

정치의 태도는 엇갈린다. 국회에는 15대 이후 거의 매 국회마다 사형폐지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한 번도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정부는 2020년부터 유엔총회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2023년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법무부는 집행시설 점검을 지시하고 사형확정자 일부를 집행시설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옮겼으며, 사형의 집행시효 30년을 없애는 형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대체형벌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개정안도 나왔으나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존치 의견이 여전히 다수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논란이 번진 10월 10일은 세계 사형폐지의 날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성명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한 세대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형 집행 없이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해 왔다고 하면서, 이제 '사실상 사형폐지'라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법률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 갈 것인지 논의를 본격화할 때라고 했다.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형벌권의 정당한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인권위의 물음은, 지금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게도 향해 있다.

집행은 하지 않으면서 제도는 유지하는 이 어정쩡한 상태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답을 내야 한다. 그 논의를 할 때 미국의 이번 두 사건은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사형을 둘 것인가의 문제와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의 문제는 따로 따져야 하고, 뒤의 문제에서 실패하면 앞의 문제에 대한 답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맺으며 — 존치론에 서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끝내 합의하지 못할 수는 있다. 응보의 정의와 오판의 공포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이기기 어려운 가치들이다. 그러나 존치론에 서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형벌은 죄인에게서 자유를, 극단적으로는 생명을 빼앗는다. 그러나 존엄까지 빼앗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사형이 정당하다면 그것은 엄숙하고 절제된 절차 속에서, 필요 이상의 고통과 모욕 없이, 구경거리가 되지 않게 집행될 때에만 그렇다. 사람의 몸을 총탄으로 부수는 방식을 택하고 그 장면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권력의 전시다.

국가가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그 국가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보여 준다. 죽음을 중계하는 나라는 죄인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품격을 처형하는 것이다. 12월 3일 이전에 미국 사회의 양식이 이 계획을 멈춰 세우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 공감신문, 「미국 국방부의 미군 기지 총기난사범 사형 생중계 계획, 국제적 논란 중심에 서다」 (2026.10.10)
  • 더스쿠프, 「미국서 총살형 생중계? 트럼프, "내가 승인"...커지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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