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북알프스 알펜루트 4일 ㅡ 물길을 따라간 여행 (3부)

 

제3부. 요세미티에 견줄 골짜기, 200년의 정원

북알프스 알펜루트 4일 연재:제1부 도야마와 쿠로베 댐 · 제2부 알펜루트 횡단 · 제3부 가미코치와 가나자와(지금 글) · 제4부 토롯코 열차

셋째 날 오전은 가미코치(上高地)였다. 나가노현 마쓰모토시(松本市), 해발 약 1,500m. 중부산악국립공원 안에 있고, 특별명승과 특별천연기념물로 함께 지정된 곳이다. 아즈사가와(梓川)의 강물이 야리가타케(槍ヶ岳) 산에서 내려와 자갈밭을 만들고, 호타카(穂高)의 이어진 봉우리들과 활화산 야케다케(焼岳)가 골짜기를 둘러싸고 있다. 1915년 야케다케의 분화로 강이 막혀 다이쇼이케(大正池) 연못이 생겼는데, 퇴적물이 쌓이면 호수를 유지하려고 준설작업을 한다고 한다.

자가용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사와타리(沢渡)나 히라유(平湯)에 차를 두고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하나, 우리는 단체관광이라 전세버스를 타고 그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겨울에는 길 자체가 닫히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통의 오지다. 그러나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탓에 자연보존은 잘되어 있고, 그 풍광은 요세미티에 못지않다.


가미코치(上高地)의 상징물은 아즈사가와(梓川)에 걸린 나무 현수교 가파바시(河童橋)다. 다리 위에서 상류쪽을 보면 호타카(穂高)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서있고, 뒤돌아서면 야케다케(焼岳)의 산 봉우리가 보인다. 그 밑으로 흐르는 아즈사가와(梓川)의 물은 너무나 깨끗하고 투명하다. 갓파바시에서 호타카쪽으로 올라가면 묘진이케(明神池)까지 편도 한 시간, 다이쇼이케까지 다녀오면 세 시간 안팎이 걸린다. 다이쇼이케까지는 평지의 트레킹코스이나, 더 들어가면 야리가타케와 호타카로 오르는 본격 등산길이다.

우리 일행은 트레킹 코스의 초입까지만 갔지만, 난 잰 걸음으로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주변의 경치에 정신이 팔려 제법 깊숙히 들어간 탓에 집결시간에 맞추느라 내려올 때는 뛰어야만 했다. 트레킹과 등산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장비를 갖춘 큰 배낭을 메고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들의 활기찬 뒷모습에서 다음에는 트레킹으로 와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요세미티가 화강암 절벽의 골짜기라면, 가미코치는 물과 자작나무와 잔설의 골짜기다.




겐로쿠엔(兼六園), 번주의 정원

오후에는 가나자와(金沢)로 넘어갔다.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과, 에도 시대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찻집 거리 히가시 차야가이(ひがし茶屋街)가 있다.

겐로쿠엔의 시작은 1676년, 가가번(加賀藩) 5대 번주 마에다 쓰나노리가 가나자와성(金沢城) 맞은편 비탈에 별장 렌치테이(蓮池亭)를 지으면서다. 1759년 대화재로 거의 타 버린 것을 11대 하루나가가 복구했고, 12대 나리나가와 13대 나리야스가 연못을 넓히고 물길을 끌어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다듬었다. 그렇게 약 200년이 걸렸다.

면적은 약 11.4ha, 연못 둘레를 걸으며 감상하는 산책을 위한 정원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 광대함과 그윽함, 인공미와 고색미, 풍부한 물과 조망이라는 여섯 가지 미덕을 겸하였다고 겐로쿠엔(兼六園, 겸육원)이라 불린다. 1874년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5년 특별명승이 되었다.


정원 한가운데 우뚝 선 동상

정원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청동상이 서 있다. 메이지 유신으로 번주의 지위를 잃은 마에다(前田) 가문의 정원에 유신을 기념하는 동상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동상은 1880년에 세운 메이지기념지표(明治紀念之標)다. 유신 자체가 아니라, 1877년 세이난 전쟁(西南戦争)에서 전사한 이시카와현(石川県) 출신의 신정부군(메이지정부) 장병 400여 명을 위로하려고 세웠다. 세이난 전쟁은 1877년 메이지 신정부에 맞섰던 '라스트 사무라이'의 모델이 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일으킨 전쟁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신화 속의 영웅 야마토타케루다. 높이 5.5m.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청동 인물상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은 1874년에 이미 번주의 손을 떠나 시민의 공원이 되어 있었다. 동상은 마에다 가문이 스스로 세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뀐 자리에 새 시대(메이지 시대)가 자기 기념물을 세운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메이지 유신으로 영지를 잃은 옛 주인의 정원 한복판에, 새 정부를 위해 죽은 이들의 비를 세운 것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표식이 아니었을까.


히가시 챠야가이(ひがし茶屋街)

히가시 차야가이는 1820년, 12대 번주 마에다 나리나가가 성 아래 흩어져 있던 찻집을 한 곳에 모으면서 생겼다. 여기서 찻집이란 게이샤가 춤과 음악으로 손님을 맞던 유흥의 집이다. 2층 목조 가옥과 돌길이 그대로 남아있고, 금박 공예품 가게와 찻집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가나자와는 한자로 금택(金沢)이다. 옛날 한 농부가 마(麻)를 씻던 늪에서 사금(沙金)이 나왔다는 전설에서 온 이름이라고 한다. 100만 석의 부를 바탕으로 번(藩)이 공예를 키운 덕에, 지금도 일본 금박의 거의 대부분이 이 도시에서 나오고, 거리에는 금박 가게가 유난히 많다.

현재 예전의 게이샤는 없지만 여전히 찻집이 즐비하고, 아이스크림 가게, 음식점 등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하다.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러 금박을 입힌 아이스크림을 맛보면서 2층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자니, 왠지 어릴 적 뛰놀던 배꼽마당을 보는듯 낯익은 데자뷰가 느껴진다. 

한편, 이 거리 바깥쪽에는 특이한 가게들이 있다. "一生顯命營業中(일생현명영업중)" 이라는 간판을 내놓고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장사하는 집도 있고, 사라진 쇼군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인지 "쇼군 버거(Shogun Burger)"라는 와규전문 햄버거집도 보인다.



마에다 가문은 그 뒤 어떻게 되었나

마에다(前田) 가문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1871년 판적봉환(版籍奉還), 폐번치현(廢藩置縣)으로 마지막 번주 마에다 요시야스는 영지와 통치권을 잃고 도쿄로 옮겨 갔다. 그러나 정부가 영주에게 내준 금록공채(金祿公債)가 119만 엔이 넘었고, 그 금액은 시마즈 가문 다음으로 전국 2위였다고 한다. 1884년 화족령(華族令, 구 귀족과 메이지 유신 공로자들에게 작위를 부여하고 법적 특권을 규정한 귀족 제도)이 시행되자 마에다가의 본가는 후작(侯爵)이 되었다. 

전후에 화족 제도가 폐지되면서 가문은 작위도 잃고 보통의 시민이 되었다. 그래도 대는 끊기지 않아, 가문의 당주(當主)가 지금도 가나자와의 행사에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셋째 날의 숙소는 가가(加賀)의 가타야마즈 온천(片山津温泉)이 있는 곳이었다. 호수 시바야마가타(柴山潟)를 낀 온천 마을이다. 

저녁은 역시 가이세키(懐石料理 또는 会席料理)다. 조선통신사 신유한은 <해사록>에서, "음식을 담은 그릇은 모두 금과 은, 구리로 되어 있어 빛이 나고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러나 막상 상 위에 올라온 음식들을 보면 과자가 대부분이고, 채소나 생선 요리는 지독하게 짜거나 반대로 아무 맛도 나지 않아 입에 대기 어렵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은 전혀 없다."라며 가이세키를 혹평하였다. 그러나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인연이라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이치코이치에(一期一会)의 마음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방향을 바꾸는 에스컬레이터

이날의 숙소인 APA Hotel & Resort Kaga Katayamazu Onsen Kasuikyo (佳水郷)는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 지은 호텔처럼 깨끗했다. 프런트는 2층인데, 직원 여럿이 1층까지 내려와 버스에서 짐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가 오는 중이라 그런가 했으나, 2층 프런트까지 가는 동안에도 많은 직원이 줄지어 환영 인사를 해 주어 놀랐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내려오는 쪽의 에스컬레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체크아웃 때는 직원들이 짐을 1층으로 내려 주나 보다 짐작했다.

이 호텔은 장기 대회가 열리는 공식 호텔인 듯했다. 일본 장기협회 기사들의 사인이나 글귀가 새겨진 기념품을 많이 팔고, 장기판과 장기알, 기사들의 대국장면과 사인을 전시한 전시관도 따로 있었다. 약간은 충동적이었지만, 금박의 도시 가나자와(金沢)에 온 기념으로 금박을 입힌 골프공과 골프티 세트를 제법 비싸게 주고 샀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 때 2층 로비에 모였더니, 가이드가 키를 반납한 분은 짐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 버스에 실으라고 한다. "아니, 에스컬레이터도 없는데 어떻게 짐을 들고 1층으로 갑니까" 하고 돌아보니, 어제의 그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오늘 아침에는 내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체크인 시간과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방향을 바꾸어 운행하는 에스컬레이터였던 것이다. 쌍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운행하는 에스컬레이트는 처음 보는 거라 제법 신기했다.

직원들이 친절하고, 식사시간에 손님을 접대하는 태도에서도 매너교육이 아주 잘된 호텔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호텔이 거대한 호수에 접하고 있어 아침의 일출광경이 아름다웠다. 추천할만한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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