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 이야기 — 아름다움과 위험이 함께 서 있는 바위
왜 지금 인수봉인가
요 며칠 '인수봉'이라는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자주 오르내렸다. 반가운 소식 때문이 아니다. 2026년 10월 4일 오전 10시 59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 인수봉 일대에서 암벽등반을 하던 60대 여성이 약 30m 아래로 추락했고, 헬기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고양경찰서는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튿날인 10월 5일 언론 보도가 나가면서 관심이 크게 일었다. 같은 개천절 연휴에 설악산 대청봉 부근에서도 등산객이 다치는 사고가 이어졌고, 가을 단풍철 산행 안전 문제가 함께 거론되면서 인수봉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회자되었다.
내게도 인수봉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1984년, 누구와 무슨 일로 갔는지는 이제 아련하지만 백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정상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인수봉 꼭대기에 선 사람들과 깎아지른 바위벽에 매달린 사람들이 보였다. 정상에 선 이들의 쾌감은 부러웠지만,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매달린 모습을 보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그 스포츠가 내게는 무모해 보였다. 인수봉에서 대학 산악부원들이 얼어 숨졌다는 1983년 참사를 뉴스로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그 모습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40여 년 만에 사고 소식을 접하니 그날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면서 궁금해졌다. 그때 내가 건너다보았던 저 거대한 바위는 어떤 곳이고, 그 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쌓여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인수봉의 기본 정보부터 이름에 얽힌 옛이야기, 한국 암벽등반사에서 차지하는 자리, 그리고 반복되어 온 사고와 일반인이 인수봉을 즐기는 방법까지 차례로 정리해 본다.
인수봉은 어떤 봉우리인가
인수봉은 해발 약 810.5m로, 북한산에서 최고봉 백운대(836.5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다. 백운대·만경대와 함께 세 봉우리가 솟아 있다 하여 북한산의 옛 이름이 '삼각산(三角山)'이 되었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강북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경계 부근에 있어, 사고 소식도 고양 쪽 관할로 보도되었다.
| 항목 | 내용 |
|---|---|
| 높이 | 약 810.5m (북한산 제2봉) |
| 위치 | 백운대 북동쪽, 서울 강북구·경기 고양시 경계 |
| 생김새 | 나무 한 그루 붙지 않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돔) |
| 지질 | 중생대 쥐라기에 땅속에서 굳은 화강암이 지표로 드러난 것 |
| 오르는 방법 | 등산로 없음. 로프·확보장비를 갖춘 암벽등반으로만 정상 도달 |
북한산의 화강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식어 굳은 뒤, 위를 덮고 있던 지층이 오랜 세월 깎여 나가면서 드러났다. 압력이 풀리며 바위가 양파 껍질처럼 판판하게 갈라지는 '판상절리'가 생기고, 그 결과 인수봉처럼 매끈하고 둥근 바위 돔이 만들어졌다. 우이동이나 도봉산 쪽에서 바라보면 깎아지른 듯한 하얀 바위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그 매끈함이 클라이머에게는 매력이고 동시에 위험이다.
아이를 업은 바위, 부아악
인수봉의 옛 이름은 '부아악(負兒嶽)'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등에 업은 모습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바위 앞면에 혹처럼 붙은 작은 바위를 업힌 아이로 보는 풀이가 전해진다.
이 이름은 우리 역사서에 아주 이른 시기부터 등장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조에 따르면,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비류와 온조 형제는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도읍할 만한 땅을 살폈다. 형 비류는 바닷가 미추홀을 택했고, 아우 온조는 한강 남쪽 위례성에 자리를 잡아 훗날 백제가 되는 나라를 세웠다. 학계에서는 이때의 한산을 북한산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렇다면 인수봉은 2천 년 전 한 나라의 터를 내려다본 '건국의 전망대'였던 셈이다.
'인수(仁壽)'라는 지금의 이름은 흔히 『논어』 옹야편의 구절과 연결해 풀이한다. 공자는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仁者樂山) …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仁者壽)"고 했는데, 여기서 '인(仁)'과 '수(壽)'를 따왔다는 것이다. 어진 이가 오래 산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위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한국 암벽등반의 요람
인수봉의 근대 등반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된다. 흔히 1929년 서울에 와 있던 영국인 아처(Archer) 일행의 등반이 근대적 초등 기록으로 꼽힌다. 다만 그 이전에도 정상에 오른 사람이 있었다는 옛 기록과 증언이 전해져, '최초'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산악사 연구자들 사이에 이야깃거리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인 클라이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김정태·엄흥섭 등 선구자들이 북한산과 도봉산의 바위 능선을 하나씩 개척했고, 아처와 한국인 임무가 함께 병풍암 릿지를 오른 기록도 남아 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학 산악부와 산악회들이 경쟁하듯 새 길을 냈고, 인수봉은 한국 암벽등반의 '학교'이자 '고향'이 되었다.
오늘날 인수봉에는 앞면과 뒷면을 합쳐 수십 개의 등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해외 클라이밍 정보 사이트에서도 서울 바로 곁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로 소개되는데, 루트는 주로 넓은 바위면(슬랩)과 갈라진 틈(크랙)을 따라 1~8피치 길이로 이어지고, 가장 어려운 루트는 미국식 등급으로 5.12b에 이른다고 한다. 취나드, 오아시스, 대슬랩 같은 루트 이름은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고유명사처럼 통한다.
이렇게 초보자 교육에 쓰이는 쉬운 길부터 고수들의 고난도 길까지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주말이면 출발점에 줄을 서야 할 만큼 붐빈다. 한국에서 바위를 배운 사람 치고 인수봉에 이름 하나 새기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름다움의 그늘, 되풀이되는 사고
인수봉 사고사(史)에서 가장 아픈 장면은 1971년 11월 28일이다. 전날 기상대는 서울에 영하 8도의 강추위를 예보했지만, 바람을 등진 인수봉 앞면은 바람 한 점 없이 아늑해 여러 팀이 등반에 나섰다. 해 질 무렵 기온이 곤두박질치고 강풍이 몰아치면서 하강하던 로프가 엉켰고, 어둠 속에서 7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 사고 이후 '인수봉에서는 앞면 날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이 산악계에 깊이 새겨졌다.
그로부터 12년 뒤 비극은 되풀이되었다. 1983년 4월 3일, 봄 날씨를 믿고 오른 대학 산악부와 산악회 대원들이 갑작스러운 눈·비와 강풍을 만났다. 바위는 순식간에 얼음으로 덮였고, 젖은 몸으로 6시간 넘게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20명이 조난해 7명이 숨지고 13명이 구조되었다. 숨진 이들 가운데 추락사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저체온증이었다.
당시 구조대 보고서와 월간<山>의 기록은 숨진 대원들의 마지막을 자세히 전한다. 선두에서 길을 뚫던 선배, 신입 대원을 확보하느라 힘을 다 쓴 선배, 탈출로를 찾겠다며 짧은 로프에 몸을 맡긴 선배가 차례로 쓰러졌다. 살아남은 대원들은 얼어붙은 로프를 풀기보다 서로 부둥켜안고 노래를 부르며 체온을 지켰다. 후배를 살리려 자신을 먼저 소진한 그들의 동료애는 지금도 한국 산악계가 기억하는 이야기다.
최근 사고들을 시간 역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일자 | 사고 내용 | 결과 |
|---|---|---|
| 2026. 10. 4. | 암벽등반 중 60대 여성 약 30m 추락 | 사망 |
| 2025. 10. 28. | 하강 중 60대 여성 약 5m 추락. 인근에서 합동 산악구조훈련 중이던 구조대가 즉시 구조 | 부상 |
| 2025. 6. 1. | 서로 다른 동호회 소속 60대 남성 2명이 하강 중 각각 15m, 50m 추락 | 중상 2명 |
| 2025. 5. 31. | 35세 남성 등반 중 약 30m 추락 | 사망 |
| 2015. 6. 13. | 취나드B 코스에서 약 5톤 낙석이 대기 중이던 산악회원들을 덮침 | 사망 1명, 부상 3명 |
| 2014. 3. 16. | 오아시스 코스 낙석 사고, 인수봉 암벽장 전면 임시폐쇄 | 부상 |
| 1983. 4. 3. | 봄철 기상 급변(눈·비·강풍)으로 대학 산악부 등 20명 조난, 사망자 전원 저체온증 | 사망 7명, 구조 13명 |
| 1971. 11. 28. | 기상 급변(강풍·혹한)으로 여러 팀 동시 조난 | 사망 7명, 부상 16명 |
표를 보면 사고의 유형이 몇 가지로 모인다. 첫째, 하강 중 추락이다. 정상에 오른 뒤 긴장이 풀리고 로프 조작이 복잡해지는 하강 단계에서 사고가 잦다. 둘째, 낙석이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해빙기나 큰비 뒤에는 풍화된 바위가 떨어지기 쉬워, 국립공원공단은 해마다 해빙기에 암벽장 출입을 통제하고 낙석 제거 작업을 벌인다. 2015년 사고 직후에는 인수봉 전 구간을 막고 전국 국립공원의 암벽등반 지역을 일제 점검하기도 했다. 셋째, 기상 급변이다. 1971년과 1983년의 교훈처럼, 바위 앞면의 날씨와 능선 위의 날씨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피해자 상당수가 60대라는 점이다. 경력이 오래된 등반가일수록 '늘 하던 대로'의 방심이 끼어들기 쉽고, 나이가 들면서 순간 반응과 근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번 10월 4일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험이 곧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인수봉 정상의 생일잔치 — '도봉산 왕언니' 신옥자 씨
사고 소식과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결의 인수봉 이야기도 화제가 되었다. 월간<山> 10월호가 소개한 '도봉산 왕언니' 신옥자 씨다. 1934년생(주민등록상 1937년생)으로 산행 경력이 51년에 이르는 그는 여든 살과 아흔 살 생일잔치를 모두 인수봉 정상에서 열었다고 한다.
그의 산행은 위로에서 시작되었다. 열네 살부터 여공으로 일하며 집안을 책임졌고, 40대에 몸과 마음이 무너져 일을 그만둔 뒤 요양 끝에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을 먼저 보낸 뒤에는 숨은벽 능선을 홀로 올라 백운대에서 실컷 울었고, 그 뒤로 산은 그의 일상이 되었다. 바위에 끌려 암벽을 정식으로 배운 뒤에는 해 질 녘 인수봉에 올라 정상에서 서울 야경을 보고 밤늦게 내려오곤 했다고 한다.
기록도 놀랍다. 아흔 살이던 2023년에 설악산 노적봉의 암벽 루트를 올랐고, 아흔을 넘어서도 해마다 공룡능선을 찾는다. 여든 살에는 22일 일정으로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다만 젊은 시절 로프 없이 홀로 바위 능선을 다닌 일은 본인도 지금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돌아본다.
정작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오르는 힘이 아니라 물러서는 지혜다. 지금은 하루 세 시간 남짓만 걷고 정상까지 가지 않는 날도 많다. 오를 수 있는 높이가 계단처럼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산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인수봉 사고 기록과 겹쳐 읽힌다. "몸이 안 가지는 때가 왔을 때, 안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일반인은 인수봉을 어떻게 즐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 등산객은 인수봉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아예 없고, 로프와 확보장비를 갖추고 기술을 익힌 사람만 암벽등반으로 오를 수 있다. 등산화만 신고 바위에 붙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생명을 거는 일이다.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들어가면 자연공원법에 따른 과태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인수봉을 즐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 가까이서 올려다보기 — 우이동 쪽(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에서 도선사를 지나 백운대탐방지원센터, 하루재를 넘으면 인수봉 바로 아래에 닿는다. 바위벽에 매달린 클라이머들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규모가 실감 난다.
- 백운대에서 내려다보기 — 위문을 거쳐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 오르면 바로 옆에 우뚝 선 인수봉을 마주 볼 수 있다. 백운대 정상부도 바위 구간이니 난간과 쇠줄을 꼭 잡고, 사진 찍다 발을 헛디디는 사고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 제대로 배워서 오르기 — 직접 오르고 싶다면 등산학교나 산악회의 정규 암벽교육 과정을 먼저 거치는 것이 정석이다. 실내 클라이밍으로 기초 근력을 다진 뒤 바위 교육을 받고, 반드시 경험 많은 선배와 함께 쉬운 루트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르는 사람이라면 다음 몇 가지는 기본으로 지켜야 한다.
- 헬멧은 선택이 아니다. 낙석은 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덮치기도 한다.
- 하강 전 로프 끝 매듭과 확보 상태를 서로 확인한다. 최근 사고 상당수가 하강 중에 났다.
- 앞면이 아늑해도 능선과 뒷면의 바람을 따로 확인하고, 일몰 시간을 넉넉히 계산한다.
- 봄 해빙기와 큰비 뒤에는 국립공원공단의 통제 공지를 확인하고, 통제 기간에는 오르지 않는다.
- 경력이 길수록 '늘 하던 대로'를 의심한다. 체력과 반응 속도는 해마다 다시 점검해야 한다.
맺으며 — 어진 이는 오래 산다
인수봉은 2천 년 전 온조가 나라 터를 살피던 부아악이었고, 일제강점기 개척자들이 길을 낸 한국 암벽등반의 요람이며, 지금도 주말마다 수많은 클라이머가 매달리는 살아 있는 바위다. 그 아름다움 뒤에는 1971년과 1983년의 참사부터 이번 10월의 추락 사고까지 적지 않은 슬픔도 함께 쌓여 있다.
공자가 말한 '인자수(仁者壽)'를 산에 대입해 보면, 어진 산꾼이란 산을 이기려 하지 않고 산 앞에서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날씨를 두려워하고, 장비를 의심하고, 자신의 체력을 냉정하게 보는 사람만이 그 바위 위에서 오래 산다. 아흔 넘어서도 산을 다니는 신옥자 씨의 비결이 '오르는 법'이 아니라 '물러서는 법'이라는 것도 같은 이야기다.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분의 명복을 빌며, 인수봉을 찾는 모든 이가 무사히 내려오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 위키트리 — 북한산 암벽 오르다 참변...60대 여성 추락 사망
- 월간<山> — 90세에 인수봉, 93세에 공룡 언터처블 '도봉산 왕언니'(2026.10.12, 서현우)
- 경기일보 — 북한산 인수봉서 암벽등반 사고 잇따라…1명 사망·2명 부상(2025.6.)
- 코리아중앙데일리 — 2025.5.31. 인수봉 추락 사망 보도
- 경향신문 — 북한산 인수봉서 5t 낙석 사고(2015.6.)
- 산업일보 — 북한산 인수봉 전면 출입통제, 낙석제거 작업(2014.3.)
- Daum 카페 '등산정보' 게시글 — 1983년 4월 3일 인수봉 조난사고(대학산악연맹 구조대 보고서, 월간<山> 박인식 기자 글 인용)
- 클리앙 게시글 — 1971년 북한산 인수봉 조난사고 자료
- 프레시안 — 『삼국사기』 온조왕 조와 한산·부아악
- theCrag — Insubong 등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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