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차는 왜 가다가 멈출까 - 소란은 없다

 

뉴캐슬에서 기차가 멈췄다 — 아무도 화내지 않는 나라

2024년 2월, 집사람과 둘이서 약 2주에 걸쳐 프라하-글래스고-에딘버러-쉐필드-로마-피렌체-프랑크푸르트를 여행했다. 항공권, 호텔, 기차표, 여행지 관람권까지 모두 직접 예매한 여행이었다. 각 여행지의 에피소드는 생각나는 대로 차차 올릴 생각이고, 오늘은 에딘버러에서 쉐필드로 기차로 이동하던 중 뉴캐슬에서 기차가 운행을 중단하여 다른 기차로 갈아탄 이야기다. 쉐필드에는 지금은 영국변호사가 된 딸이 유학 중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벌써 며칠이 지난 뒤라, 쉐필드행 직행 기차에 오르고는 긴장을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뉴캐슬에서 기차가 멈추더니 승객들이 모두 내리는 것이었다. 기차에는 우리 부부만 남았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내려서 우왕좌왕하다가 딸에게 전화로 경위를 파악하니, 어떤 연유인지 우리 기차는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대체 기차에 무조건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를 살피니 같은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쪽에서 잠시 기다리니 기차 한 대가 들어왔다. 가지고 있는 승차권으로 그냥 탈 수 있는데, 이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가 언제 올지 기약이 없단다. 그 기차가 쉐필드로 가는 기차인지도 알 수 없었다. 70년대 등교버스같이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기차에 마구 밀고 들어가 탔다. 제대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눈치만 살피는데, 다음 역에서 많은 사람이 내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유가 생겨 살펴보니 쉐필드를 경유하는 기차가 맞았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 마중 나온 딸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왔다. 단어 몇 개로 소통하는 서툰 영어에, 낯선 땅에서 당황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뉴캐슬 기차역


그런데 정작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그 북새통에 고함을 치거나 불평하는 승객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이런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답게 상당 구간이 빅토리아 시대에 깔린 노후 시설 위를 달리고, 민영화로 선로는 선로회사가, 열차는 수십 개 운영사가 나눠 맡으면서 책임도 잘게 쪼개졌다. 여기에 승무원과 차량 부족, 잦은 파업, 궂은 날씨까지 겹친다. 통계로도 전국 열차의 3~4%가 취소되고, 정시에 도착하는 열차는 세 대 중 두 대 정도에 그친다. 특히 우리가 탔던 노선의 운영사는 승무원 부족으로 인한 사전 취소까지 합하면 한때 열차 네 대 중 한 대꼴로 취소된 적도 있다고 한다. 승객들에게 운행 중단은 낯선 사고가 아니라 일상인 셈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난 글에서 쓴 일본의 신칸센 표 두 장도 그랬지만, 이곳 사람들도 불편에 대해 그냥 참는 것이지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국민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러나 불편을 참아내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 저들의 태도 또한, 한편으로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었다. 빨리 고치라고 소리치는 힘과 묵묵히 견디는 여유, 그 사이 어디쯤에 좋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낯선 땅의 기차는 그렇게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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