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키우기

아버지 노릇 30년, 변호사 노릇 26년

법정에서는 어지간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저이지만, 자식 앞에서는 지금도 서툰 아버지입니다. 변호사 생활과 아버지 노릇을 거의 같은 세월 동안 해 왔는데, 돌아보면 더 어려운 쪽은 언제나 후자였습니다. 소송에는 판례와 법리라는 기준이 있지만, 자식 키우는 일에는 정답을 알려 주는 판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건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어제 통한 방법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 것이 부모 노릇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아이가 잠든 얼굴만 보고 출근하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의 인생이 걸린 사건 기록을 붙들고 있으면서, 정작 내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는 묻지 못한 날들이었습니다. 운동회와 학예회는 늘 아이 엄마의 몫이었고, 저는 사진으로 그날을 뒤늦게 만났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가장의 책임이라 생각했지만, 세월이 지나 보니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버지의 성공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그 시절 함께하지 못한 저녁은 어떤 것으로도 되사올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가정의 갈등을 보아 왔습니다. 상속을 두고 등을 돌린 형제들, 대화가 끊긴 부모와 자식이 결국 법정에서 마주 앉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분쟁의 뿌리에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오래 쌓인 서운함과 나누지 못한 대화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판결문 한 장으로 재산은 나눌 수 있어도 마음은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짐하곤 했습니다. 적어도 내 자식과는 말이 끊기지 않는 아버지가 되자고. 훈계보다 먼저 듣는 아버지가 되자고 말입니다.

물론 다짐대로만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의 선택이 제 기대와 다를 때, 나서서 길을 정해 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남의 일에는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던 변호사가 제 자식 일 앞에서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부모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배운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은 남이 정해 준 답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론으로 살아갈 때 후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대신 걸어 주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다고 믿어 주고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믿고 기다리는 일, 그것이 제가 아는 가장 어려운 사랑의 방법입니다.

이제 자식은 자라서 제 품을 떠났고, 저는 잔소리할 자격 대신 응원할 자격만 남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자식이 저에게 세상을 가르쳐 주는 날도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세상을 자식이 먼저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운하기보다 든든해지는 것을 보면, 저도 조금은 늙고 조금은 자란 모양입니다. 자식 키우기의 끝은 자식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임을, 저는 30년이 걸려서야 배웠습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저의 다짐도 실은 집에서 먼저 시험을 치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마음 하나 살피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블로그의 첫머리에 자식 이야기를 놓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저의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은 결국 가족이니까요.

오늘도 자식의 안부 전화 한 통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저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배우는 중인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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